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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산책] 3회 프랑스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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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산책] 3회 프랑스 월드컵

입력
2002.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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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축구연맹(FIFA) 가맹 51개국 중 36개국이 출전한 1938년 제3회프랑스월드컵 때 아시아국가가 첫 출전했다. 인도네시아(당시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일본의 불참으로 지역예선 없이 티켓을 따냈다.또 앞선 대회에서 연속 1회전 탈락한 브라질이 이 대회를 통해 세계축구계에 깊은인상을 남겼다. 화려한 개인기와 창조적인 플레이로 인기를 모았다. 폴란드와의 1차전(6_5승)은 월드컵 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힌다. 체코와의준준결승은 3명이 퇴장당하고 3명이 병원으로 실려갔을 정도로 치열해 ‘보르도의 전투’라고 불렸는데브라질은 1_1 무승부 후 재경기에서 2_1로 승리했다. 당시는 선수가 부상으로 나가도 교체멤버를 투입할 수 없었고연장전에서 승부가 안 날 경우 다음 날 재경기로 승부를 가리도록 했다. 승부차기제는 82년 대회, 교체멤버 규정은 70년 대회부터 도입되었다.

브라질의 피멘타 감독은 이탈리아와의 준결승서 “체코전의피로 때문에 결승전에 대비, 공격수 딤과 레오니다스를 쉬게 한다”며 엔트리에서빼 버렸다. 폴란드전서 4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에 올랐던 레오니다스는 오버헤드킥을 처음 선보인 신기의 축구영웅이었다.브라질은 결국 이탈리아에 1_2로 패하지만 딤과 레오니다스가 뛰었다면, 또 재경기 없이 승부차기제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이탈리아는 결승서 헝가리에 4_2로 승리하고 처음으로 2연속 우승의 영광을 이루었다.

브라질에 축구가 전해진 시기는 19세기말 영국선원에 의해서이다. 브라질의 클럽은팔메이라스(이탈리아계) 코린투스(스페인, 터키계) 상파울루(독일계) 포르투게사(포르투갈계) 등 유럽이민들이 주축이 돼 창설됐다. 브라질축구의 초창기때엔백인 상류사회를 중심으로 축구가 확산돼 흑인과 경기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거꾸로 흑인선수가 두각을 나타냄으로써 축구는 흑인의 지위향상에공헌했다. 삼바와 함께 축구가 생활인 브라질이 38년 대회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세계 황제에 등극하기까지는 펠레라는 천재가 나타날 때 까지 꼭2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유승근기자

u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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