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1월26일 미국의 군인 더글러스 맥아더가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태어났다.1964년 몰(歿). 맥아더는군인의 피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더글러스 맥아더의 아버지 아서 맥아더(1845~1912)는 10대의 나이로 남북 전쟁에 지원병으로 나가 혁혁한전공을 세운 뒤 나이 스물에 연대장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1898년의 미국-스페인 전쟁에서도 무공을 세운 뒤 필리핀에 근무하다 육군 중장으로퇴역했다.
아들의 이력은 아버지보다훨씬 더 찬란했다. 그리고 그 이력의 두드러진 부분은 60대 이후에 이뤄졌다.
비록 더글러스 맥아더가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장까지 진급을 하기는 했지만, 1937년 57세의 나이로 퇴역하기까지 그는 이렇다 할 전공을 세운 바 없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과 6ㆍ25동란은 이 퇴역 장군을 다시 군대로 끌어들여 영웅으로 만들었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1941년 현역에 복귀한 이 늙은 군인은 연합군 남서태평양 사령관으로서대일(對日) 전쟁을 지휘해 천신만고 끝에 1945년 8월 일본을 항복시키고 일본 점령군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1950년 6ㆍ25가 터지자 맥아더는 유엔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북한 인민군을 한만(韓滿)국경까지 몰아냈다.
중국군의 개입으로 유엔군이 다시 후퇴하게 되자그는 만주 폭격과 중국 연안 봉쇄, 대만 국부군(國府軍)의 전쟁 투입을 주장했고, 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한 트루먼 대통령과의 불화로1951년 4월 사령관 지위에서 해임됐다.
인천광역시 중구 응봉산에는1957년 10월3일 맥아더의 동상이 들어섰다. 구한말 이래 그 때까지 만국공원, 서공원(西公園) 등으로 불리던 응봉산 일대는 그 날 이후 자유공원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고종석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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