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부실채권을 우려, 기업대출을 외면한 채 가계대출에만 총력을 기울이면서 가계부채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여기에는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 장기간 지속돼 온 저금리 기조에 따른 가계의 대출 심리 확대 등도 한 몫을 했다. 전문가들은 “금리가 상승세로 반전하고 과열된 부동산 경기에 거품이 빠질 경우 가계 부실로 인해 금융시스템이 붕괴되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 빚더미 가계
2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말 예금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154조4,591억원으로 전년 말(106조2,272억원)에 비해 무려 45.4% 증가했다.
총대출에서 가계대출이 차지하는비중도 98년 말 27.7%에서 2000년 말 34.9%, 지난해말 43.9% 등으로 급속히 늘어 50%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반면 은행들의 기업대출 비중은 98년 말 61.6%에서 지난해 말 49.2%로 큰 폭 하락했다. 올해도 시중은행들은 가계대출을34조원 가량 늘릴 계획이지만 대기업 대출은 오리려 2조5,000억원 정도 줄일 예정이어서 가계대출 편중 현상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가계 부채의 또 다른 축인 신용카드 사용액도 98년 30조원 가량에 불과했지만 지난 해에는 5배 가량인 150조원을 넘어섰다.신용불량자도 급증해 지난해 말 현재 개인 신용불량자는 1년 전보다 17.6%(36만6,000명) 증가한 245만명에 달했다.
■ 중장기 대책 시급
가계부채 증가가 내수 진작을 통한 경기부양 효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속도가 지금처럼 지나칠 경우 ‘가계 부채 급증→연체율 증가→신용불량자 및 개인 파산 양산→금융기관 부실→국가 경제 부실화’ 의 시나리오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정책 당국의 발걸음도 분주해졌다. 전철환(全哲煥) 한국은행 총재는 은행장 간담회에서 “가계대출을 자제하고 기업여신을 확대하기 위해 가계대출이 많은 은행인 총액한도대출을 적게 받도록 기준을 변경키로 했다”고 밝혔다.
금융연구원도 재정경제부의 용역을 받아 가계대출 확대에 따른 대책 마련에 착수하는 한편31일에는 가계금융부채와 관련한 정책 세미나를 개최키로 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당국이 근시안적으로 인위적인 억제책만 내놓을 경우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만큼 중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입을 모은다.
삼성경제연구소 유용주 연구위원은 “금융기관의 가계대출에 대한 신용관리강화, 새로운 수요처 발굴 등이 필요할 때”라며 “정부는 근시안적인 억제 보다는 기업 부문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거시정책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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