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년(壬午年) 들어서도 희망이 안 보인다.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정의와 도덕은 이미 설 자리를 잃었다.
이용호 주가조작 사건에 이어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등 각종 게이트와 윤태식 사건에서 보듯 권력 주변과 정·관계 여기 저기에서 부패와 비리의 악취가 코를 찌르고 있다.
사건의 정점에 대통령의 친인척과 전·현직 비서관은 물론 최고 권력기관의 실세들이 알게 모르게 개입되어 있지만 검찰 수사는 변죽만 울렸을 뿐 사건의 몸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분노하다 못해 지금 절망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남은 임기 동안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불퇴전의 결의로 임하고 특별수사검찰청을 조속히 만들겠다고 하였지만 뿌리 깊은 부정ㆍ비리를 한 칼에 척결할 수는 없는 까닭에 또 하나의 옥상옥(屋上屋)에 그치지나 않을까 하여 이를 신뢰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국제사회에서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부패공화국으로 인식돼 있다.
지난해 '국제투명기구'가 밝힌 2001년도 국가별 부패정도를 나타내는 '투명성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91개국 중 42위(10점 만점에 4.2점)다.
이런 가운데 '반부패 국민연대'가 서울의 중ㆍ고생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부패·반부패 의식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부패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91%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특히 10명 중 3명 이상(33%)은 가장 부패한 집단으로 정치권을, 이어 기업(12%), 공무원(11%), 법조계(9%), 언론계(9%), 교육계(8%) 순으로 꼽았다.
그리고 '감옥에서 10년을 살아도 10억 원을 벌 수 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는 항목에 대해 16%가 '그렇다'고 응답해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은 문제가 없다는 의식을 보였다.
뇌물 수수 등 부정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64%가 '법을 어겨도 가벼운 처벌에 그치기 때문'이라고 답했으며 29%는 '법을 지키면 오히려 손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에게 거울이 되어야 할 어른들이 투명하지 못하고 온갖 부정과 비리의 온상으로 청소년들에게 비춰진 당연한 결과다.
기업들은 로비를 위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분식 회계를 통해 기업의 영업 성과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은 수 천 만원에서 수 억 원을 받아도 정치 자금 또는 떡값이란 명목으로 면죄부를 받는, 법의 잣대가 고무줄처럼 제멋대로인 나라가 세상에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법은 있으되 힘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선별적으로 지도층에게는 비껴가고, 힘없는 사람에게는 '법대로'라면 정부나 사법부는 부정 부패를 조장하고 방조하는 셈이 되는 것 아닌가.
결국 법 집행의 기본 원칙부터 무너지고 있는 제도권에서 정의구현이나 윤리, 도덕을 운운해봐야 그저 한 토막의 코미디일 뿐이다.
세계의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이 별탈 없이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 원동력은 공무원의 부정 비리가 없기 때문이며 법 집행이 공평주의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즉, 법은 무섭고, 잘 지키면 이익이 되지만 어기면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손해가 된다는 손익 계산을 할 수 있도록 명백히 규정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법을 어겨 저질러지는 부정ㆍ비리는 국가를 망치고, 개인은 패가망신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법이 엄정하고 공평하게 집행되는 사회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기도 전에 부정부터 배워서야 되겠는가. 어른들의 뼈를 깎는 성찰과 자성이 절실하다.
/이윤배 조선대 교수 컴퓨터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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