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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천지만물 잘 모셔야 참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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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천지만물 잘 모셔야 참사람이지"

입력
2002.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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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뭔데 / 전우익 지음ㆍ현암사 발행경북 봉화군 상운면 구천마을, 할아버지 대부터 살던 낡은 집에서 홀로 자급자족하며 사는 노인 전우익(77)씨의 아호는 ‘언눔’이다.

무명씨라는 뜻이다.

‘사람이 뭔데’는 전씨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1993)‘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1995) 이후 7년 만에 세번째로 출간한 편지 글 모음이다.

“맨날 해봤자 그놈의 소린 그놈의 소릴 수밖에 없는데 또 지껄였습니다. 너절한 삶과 천방지축으로 읽은 책 이야길 썼습니다”라고 그는 책 서문에서 말했다.

하지만 책에 실린 12편의 글에서는 참사람 됨을 추구하는 그의 생각이, 갈수록 자연과 멀어지는 우리 생활에 대한 안타까움이, 농사꾼으로 살면서 몸으로 얻은 생의 지혜가 암향(暗香ㆍ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는 그윽한 향기)처럼 배어나온다.

제목은 사람살이를 보는 그의 시각을 나타낸다.

‘사람이 뭔데’는 사람살이가 별 것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인권(人權)에만 매달린 사람은 가짜요, 목권(木權) 옥권(屋權) 산권(山權) 강권(江權), 천지만물에 두루 성스러움과 존엄이 깃들어 있음을 알고 받들고 대접하는 게 참사람 아닐까 싶습니다.”

삼라만상의 안위가 염려스러워 그는 혼잣말로 “인간이 뭔데, 사람이 뭔데, 내가 뭔데…”를 되뇌며 인간의 파괴적인 손길을 경계한다.

집 앞마당에 있는 자식 같은 30여 종의 나무를 구하고 길러온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연에 발 붙여 발바닥으로 살아가자고 권유하는 그의 글은 거창한 환경론이나 유유자적하는 자연 찬미는 아니다. 그야말로 한평생 농사꾼으로 나무 하며 살아온 지혜가 담겨 있다.

누구보다 흠모한다는 도연명의 시부와 화가 김용준의 '근원수필', 그리고 노신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로 그는 나뭇결을 닮은 부드러운 곡선의 삶을 이야기한다.

경북 봉화 대지주집안에서 태어나 경성제대를 중퇴한 전씨는 청년운동을 하다 사회안전법에 연루돼 6년여 수형생활을 한 뒤 고향에서 줄곧 농사 짓고 살아왔다.

10여년전 우연히 그가 쓴 글을 본 출판사의 권유로 책을 내면서 그 삶이 알려졌다. 부들로 자리 엮기, 썩은 나무나 집 뜯은 나무를 되살려 쓰임새 있는 물건으로 만들어 정인들에게 선물하기가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그가 알려주는 자신의 소일거리이다.

“어쩌실래요. 빨리빨리와 천천히.” 전우익씨는 자연을 등진 도시인, 속도에 미친 세상에 가만가만 반문한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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