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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권위 뉴베리상 수상 린다 수 박 e메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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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권위 뉴베리상 수상 린다 수 박 e메일 인터뷰

입력
2002.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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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를 통해 전해지는 린다 수 박(42)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들렸다.그가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동문학상인 뉴베리 상(Newbery Medal) 2002년 수상자로 결정(23일자 1면 보도)된 다음날이었다.

TV 출연 요청을 받고 뉴욕 시내로 나갔다가 뉴욕주 로체스터의 자택으로 막 돌아왔다는 박씨는 계속해서 전화가 걸려 오고 수백 통의 e메일이 쏟아지는 통에 분주하다고 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갑작스런 일에 너무지쳤다면서, e메일로 질문을 하면 답을 보내겠다고 상냥하게 말했다.

그의 친절하지만 단호한 태도에서 미국에서 이민 2세로 살아가는 이가 겪었을 삶의 애환과 굴곡이 느껴지기도 했다. 영어로 된 그의 답은 반나절 만에 도착했다.

-수상 소감을 말씀해 주시지요.

“뉴베리상은 가장 권위있고 역사가 오래 된 아동문학상입니다. 뉴베리상을 받게 되다니, 꿈만 같아요. 더욱이 재미동포가 이 상을 수상하기는 처음이지요. 흥분되고 기쁨을 누를 수 없습니다.”

-수상작인 ‘단 하나의 도자기(A Single Shardㆍ2001)’와 그 전에 발표한 ‘널 뛰는 소녀(Seesaw Girlㆍ1999)’ ‘연 싸움꾼들(Kite Fightersㆍ2000)’은 모두 한국의 전통 사회와 문화에 관한 것입니다. 한국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데요, 이런 관심은 어떻게 비롯된 것입니까.

“우리 부모님은 이민 1세대입니다. 미국으로 건너와 일리노이주에 정착하면서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한국인이라고는 주위에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는 마을이었죠. 부모님은 내가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기를 바라셨고, 미국 사회에 잘 적응해서 성공하기를 소망하셨어요. 내가 성장해서 가족을 갖게 됐을 때, 나는 아이들에게 한국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에 관한 책을 읽고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한국 전통 문화에 관한 자료는 어떻게 얻을 수 있었는 지요.

“한국에 관한 자료를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허구(fiction)’의 장르인 동화를 택한 것이죠.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정보를 어느 정도 갖고 있으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나는 현재를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이들은 지루한 역사책보다는 재미있는 동화를 통해 옛 이야기를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국의 어린이들이 한국 이야기에 흥미를 갖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미국에서 한국에 관한 동화가 많이 나오진 않았어요. 그만큼 한국을 알게 될 만한 기회가 없었던 것이죠. 제 생각엔 아이들은 좋은 내용의 동화라면 어느 나라에 관한 이야기든 즐겁고 재미있게 읽는 게 아닐까 싶어요.”

-어린이를 위한 동화뿐만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시와 소설도 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네 살 때부터 시를 쓰고 이야기를 지었어요. 어렸을 적에 내가 제일 좋아한 것은 책 읽기였어요. 아홉 살 때 아동 잡지에 짧은 시를 써냈는데, 그게 처음으로 세상에 발표한 작품이었어요. 그때 원고료로 1달러가 표시된 증서를 받았는데, 1년뒤에 출판사에서 현금으로 바꿔주겠다고 하더군요. 아버지는 그 증서를 액자 속에 넣어 벽에 걸어 놓았어요. 출판사에 연락해서 꼭 현금으로 바꿔야하느냐고 물었죠. 액자 속에 넣은 증서가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책상 위에 있어요.”

-동화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나의 첫 직업은 석유회사의 홍보 담당이었죠. 홍보 자료를 작성하는 일이었는데, 내가 쓰고 싶었던 종류의 글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직업으로서의 글쓰기를 배울 수 있었고, 어떤 주제든 잘 다듬어서 글로 만들어내는 방법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직장을 그만 두고 1983년에 영국으로 건너가 문학을 공부했어요. 광고회사에서 일하기도 하고, 요리 전문 기고가로 활동하기도 했고, 외국인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어요. 아일랜드인과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은 뒤에도 영어 교사로 일했지요. 너무 바빠서 동화를 쓸 생각도 못했는데, 1990년에 미국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어요. 계속 무언가 창작을 했지만 정말 쓰고 싶은 글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는데, 동화를 써 보면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동화 창작을 시작해 보니 정말 즐거운 작업이라는 걸 알게 됐지요.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고, 1999년에 첫 작품으로 ‘널 뛰는 소녀’를 발표했지요.”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 3월에 네 번째 동화가 나옵니다. ‘내 이름은 게이코였다(When My Name WasKeiko)’라는 제목의 책인데,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입니다. 아직 한국에 갈 계획은 없지만, 곧 방문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요.

“나는 한국말을 잘 할 줄 모르고 한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나의 한국 이름은‘박명진’입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요. 뉴베리상을 받게 됐으니 더 많은 미국인이 한국에 대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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