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가 진동하는 빈민가 임대주택의 방 하나에 한가족 또는 두 가족이 산다. 어떤 지하실에는 부모와 세 자녀, 돼지 네 마리가 함께 뒹군다. 또 다른 지하 부엌방에는 7명이 살고 있는데 한 아이는 방에 죽은 채 방치되어 있다.…'19세기말 빅토리아시대 런던을 비롯한 영국 대도시들은 당시 신문기사가 전하듯 '처절한 통곡' 그 자체 였다.
산업혁명의 공해와 빈민인구 폭발로 대도시들은 그야말로 지옥을 방불케 했다.
■도시개혁운동가 하워드가 '전원도시' 건설을 제창하는 것이 바로 이즈음이다.
1902년 민간자본에 의해 전원도시개척회사가 설립되고, 런던에서 50여㎞떨어진 허허벌판에 신도시가 세워진다.
예술가 성직자 등 진보성향의 중산층 1,000여명으로 출발하는 이 도시는 1930년대 이르러 노동자가 주류인 인구 1만5,000명 규모로 커간다.
이 레치워스시가 세계 최초의 인위적 전원도시이며 이른바 '그린벨트'의 효시다.
시 외곽에 도시면적의 몇 배가 되는 환상(環狀) 녹색벨트가 둘러쳐졌던 것이다.
■레치워스의 그린벨트가 세계에 전파돼 한반도에 상륙하는 것은 1970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서다.
도입 당시 어떤 장관은 자기 땅이 그린벨트에서 빠지게 되자 괘씸죄에 걸릴까 두려워 '그린벨트에 넣어달라'고 부탁하는 코미디까지 있었다.
어떤 실무 공무원은 그린벨트 땅이 돈이 되는 줄 알고 문중 땅을 자진 포함시켰다가 문중에서 파문 당한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김영삼 정권초기 서울시장이 7일만에 낙마한 것도 그린벨트 때문이었다.
■그렇게 철벽 같았던 그린벨트가 선거 때마다 금이 가더니 급기야 큰 구멍이 나고 말았다.
지정 당시 무 자르듯 쳐낸 바람에 한 마을이 두 동강이 되는 등 각종 무리(無理)가 있었지만, 그린벨트는 도시를 구제하는 마지노선 이었다.
그것이 일단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음은 일본 '근교지대'의 형해화가 말해준다.
하워드가 그린벨트 아이디어를 내놓을 당시 영국의 도시민 평균수명은 전체국민 평균보다 15년이나낮았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면, 지금도 그린벨트가 계속 늘고 있는 영국을 다시 봐야 한다.
송태권 논설위원
songt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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