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아침 수원에 도착했을 때,이방인을 반기듯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브리질인에게 눈은 쉽게 구경할 수 없는 축복 같은 것이다.눈보다 더욱 인상적이고 따뜻하게 나를 맞이한 것은 수원의 '홈호스트(home host)프로그램'이었다.수원에는 숙박시설이 넉넉치 않다.월드컵 관광객은 12만명으로 예상하지만 수원의 숙박시설은 일급호텔은 아예 없고 모텔 여관을 다 쳐도 객실 8,000여실이 고작이다.모텔이나 여관을 구했다 해도 식사가 제공되지 않아 곤란하다.아침 일찍 문을 여는 식당도 흔치 않아 걱정스러웠다.수원시는 이 문제에 대해 멋진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외국인을 한국인 가정에 식구처럼 묵게 하는 것이었다.더군다나 일반적인 민박과 달리 무료였다.
낮에 수원시를 관광하고 해질무렵 내가 묵을 홈 호스트 집으로 향했다.수원시 열통동의 49형평 아파트였다.아파트 2층 현관에 도착한 순간,나는 무척 놀라면서 기뻤다.'bem vindo'라고 적힌 종이가 아파트 현관문에 붙어 있었다.'환영합니다'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인데,하루종일 관광하는 동안 처음 접한 포르투갈어 인사였다.
문을 열자 가족이 환대를 해주었다.이 집의 가장 백연기씨(45)는 부동산 관련 학원강사였고 부인 임성숙(40)씨는 고등학교 과학 담당 교사였다.백씨 부부는 거실에 상을 차리고 출출한 배를 채우라며 김밥과 잣을 띄운 대추차를 가지고 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학원에 갔던 이 가정의 외아들 국현(14)군이 돌아왔다.현관문에 포르투갈어 인사말을 붙인 주인공이었다.그는 인터넷을 뒤져 간단한 포르투갈어를 준비했다고 해서 나를 더욱 감동시켰다.우리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중학교 1학년인데도 내가 묻는 말을 대부분 알아들었다.다소 복잡한 물음에는 막혀지만 전혀 주눅들지 않고 의사를 표현하자 어머니느 아들이 대견한 듯 옆에서 연신 웃음을 지었다.임 선생은 "아들이 외국인과 직접 대화할 기회를 갖기 위해 홈 호스트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국현군은 수줍음을 많이 탔지만 내주의를 맴돌면서 말을 계속 걸고 싶어했다.
소고기 볶음,닭고기 조림,김치,콩나물무침 등이 마련된 한국식 저녁 식사도 부담 없었다.소고기를 즐겨 먹는 브라질인의 입맛에 잘 맞았지만 물김치 같은 차가운 음식은 먹기 힘들었다.식사후 우리는 맥주를 가볍게 마시면서 서로의 문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부부는 나의 손금을 봐주기도 했고,가족앨범,국현군이 쓴 영어일기,그리고 가족의 홈페이지등도 구경시켜줬다.나는 인터넷을 통해 이메일을 체크하고,거실에서 TV를 보며 가족처럼 하룻밤을 지낼 수 있었다.
이것이 홈 호스트 프로그램이었다.수원시에서 벌써 2,000여 가구가 넘게 홈 호스트 신청을 했다고 한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접수한 결과 홈호스트에 묵고 싶다는 외국인의 신청도 100건이 넘었다고 한다.유완식(50)수원시 월드컵 추진상황실장은 "각종 월드컵 관련 외국사이트에 홈 호스트 홍보를 하고 있고,수원 시민을 대상으로도 홍보와 교육을 집중적으로 확대하고 있어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다른 도시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이 확산?瑛만? 한다.
외국인들은 겉 모습만 봤을 때 한국인보다 일본이이 더 친절하다고 생각한다.홈 호스트는 한국인들의 속내가 진정 따?렷構?,친절하고,진심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외국인에게 일깨워줄 것이다.어떤 일본 가정도 한국인 가정처럼 따뜻하게 외국인을 대하지 못할 것이다.외국인이 혹히 한국 가정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유 실장은 "사전에 외국인의 여권,거주지 확인 등 신원을 확인한 후 연결시킬 계획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안토니오 안드라데=1962년 포르투갈에서 태어나서 어렸을 때 브라질로 이주했다. 1985년 브라질 국립대 사회학과를 졸업한후 1993년 한국에 와 2000년까지 부산외대 포르투갈어 교수로 재직했다.현재 브라질로 귀국 준비중이며,아내는 일본인이다.
■웅장한 수원 화성에 매료…
눈 덮인 수원의 화성은 숨을 멈추게 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수원에서는 6월5일 미국과 포르투갈전,6월11일 세네갈과 우루과이전, 6월13일 브라질과 코스타리카전,그리고 16강 경기 1게임이 열린다. 이 경기를 보기 위해 브라질인 2만여명을 포함해 12만여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수원을 찾을 예정이다.이들에게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된 수원 화성은 멋진 관광코스가 될 것이다.특히 브라질인들은 역사유적 관광을 매우 좋아한다.브라질에는 수백개의 성이 있는데,대부분은 둘레가 300m내외로 작은 편이지만 조그만 성 하나에도 매년 20여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200여년 전에 지어진 화성은 둘레가 5,700m에 이르는 매우 큰 성이면서 한국의 개혁군주로 존경받는 정조 대왕이 부친을 위해 지었다는 역사적 의의로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이 멋진 유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했다.정조대왕이나 화성의 역사와 관련된 박물관이나 문화관을 찾아볼 수 없었다.조그만 팸플릿,안내원의 설명만으로 이 웅장한 유산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수원시청 관계자는 화성을 예로 들며 수원을 효의도시라고 자랑했는데,그렇다면 효 박물관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관광기념품도 화성 사진이 찍힌 배지,열쇠고리 정도에 불과했다.
수원시느 화성 외에 자랑거리로 '화장실 투어'를 소개했다.
음악과 그림이 갖춰진 문화공간으로서의 공중화장실이라는 것이다.외관도 카페건물처럼 지어놓았고,기저귀 교환대,장애인용 용변기 등 각종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잇었다.수원시에 이런 화장실이 30겨애나 된다고 하지만 이것을 외국인 관광코스로까지 삼는 것은 무리로 보였다.해외 관광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부유하고 교양있는 사람들이다.이들은 대개 그 나라의 박물관이나 아트 갤러리 관람 등을 좋아한다.
수원은 갈비로 유명한 곳이라 육식을 좋아하는 브라질인들이 음식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크게 없을 것 같다.가벼운 서양식 아침을 파는 식당만 문을 연다면 말이다.하지만 갈비집이 한결같이 한국식으로 바닥에 앉아서 먹어야 하는 점을 고통스러웠다.브라질인들은 양반다리를 하지 못해 이런 자리에 앉으면 다리를 쭉 펴야 하는데 숯불통 때문에 다리를 펴기가 곤란했다.이것은 브라질인뿐 아니라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불편일 것이다.
■"에스프레소·츰 광장 준비해주세요"
커피,커피.한국을 여행하면서 가장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커피다.브라질 사람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커피에 중독되어 있다.하루에 열 다섯잔 정도 마신다.숭늉처럼 마신다.
브라질인이 좋아하는 커피는 아주 진한 에스페르소.그런데 한국에는 에스프레소를 마실 곳이 거의 없다.내가 사는 부산에서도 그렇지만 수원도 마찬가지였다.커피가 없으면 브라질인은 안절부절 못한다.나도 태국에 한달 일정으로 갔다가 커피를 맘껏 마실 수 없어서 열흘만에 돌아왔을 정도다.
에스프레스 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비단 브라질인만은 아니다.유럽인도 미국식 멀건 커피보다는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따라서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한국에도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많아졌으면 한다.
브라질인은 자유분방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또한 많은 시간을 밖에서 보내면서 사람들을 즐겨 구경한다.브라질남성이 혹시 한국 여성을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미모에 대해 언급할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브라질인은 라틴아메리카 사람중에서도 서로의 몸을 만지는 걸 가장 좋아한다.만나면 반갑다고 어개를 걸거나 등을 두드리거나 배를 툭툭 친다.인사 할 때도 껴안거나 볼에 입맞추는데 익숙하다.
브라질 젊은이는 공원이나 광장에서 모여 술과 함께 드럼 반주에 맞춰 춤 추는 것을 좋아한다.
경찰이 이를 홀리건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때때로 매우 소란스럽지만 폭력적이지는 않다.수원시는 수원월드컵 경기장에서 조금 떨어진 만석공원에 월드컵 경기 기간 중 '월드빌리지'라는 축제공간을 갖춰 특산물을 판매하고 문화행사도 열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곳에 춤 추는 공간도 마련하기 바란다.브라질 젊은이들은 분명 축구 경기를 관람한 후 춤 출 광장이나 공원을 찾을 것이다.조명과 드럼 반주 시설이 갖춰진 댄싱 무대가 마련된다면 브리질인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브라질 경기가 열리는 서귀포,울산 역시 춤을 출 야외공간을 마련해준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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