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에 수용된 아프간 포로들이 국제 언론에 공개됐다.포로들은 짙은 오렌지색 스키복 차림에 수갑을 찬 채 무릎꿇고 앉았다.
털실 모자에 검은색 스키 고글과 귀마개, 두꺼운 장갑까지 낀 것이 눈길을 끌었다.
모기가 극성 부린다는 카리브해 휴양지에 어울리지 않는 행색이다.
가공할 테러 범죄의 공범이라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 핵심 조직원들에게 스키 강습을 할 리 없고 보면, 도무지 괴이한 모습이었다.
■두 발목을 엇갈리게 포개 앉힌 것은 군대식 얼차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국제법상 생소한 개념인 '불법 전투원'이어서 전쟁 포로로 대우할 수 없다면서, 엉뚱하게 두둑한 방한 장비를 갖춰준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다.
혹시 밤에 추울까 배려했다면 역시 문명국가라 하겠는데, 언론에 공개한 것은 대낮이니 그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언론은 이들의 국제법상 지위와 사법처리 등 법률적 논란에 매달려 이상야릇한 차림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지 아무런 설명이 없는 것이 의아했다.
■국제인권단체와 전문가들이 답을 내놓았다. 미군의 조치는 '감각 박탈'이란 지적이다.
짙은색 안경은 동료와 눈짓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일 수 있지만, 귀마개에 두꺼운 장갑까지 끼게 한 것은 신체 바깥 세계를 감지하는 것을 차단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호송 때 잠시 눈을 가리는 정도를 넘어선 '감각 박탈'은 전형적인 간접 고문 수단이며, 전쟁 포로에 대한 모욕적 처우조차 금지한 제네바 협약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모든 포로는 독립된 법원이 달리 판단하기 전에는 전쟁 포로로 처우해야 한다.
탈레반과 알 카에다도 군사적 실체이고, 그 조직원은 일단 전쟁 포로로 간주해야 옳다. 테러 등 범죄혐의가 있으면 국제 규준에 맞는 재판에 넘겨야 하고, 이 경우에도 고문 등 가혹행위는 불법이다. 미국이 이를 무시한채 교묘한 고문 수단을 사용한 의도는 뭘까. 고문은 범죄 혐의자의 감각과 판단과 의지를 박탈, 유죄 자백을 끌어 내는 야만적 수단이다.
이래서는 문명 사회를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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