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침낭을 펴는 사람’. 아프가니스탄 관리들이 과도정부 출범 한 달이 지나도록 카불의 대통령궁을 떠나지 않는 부르하누딘 랍바니(62) 전 대통령의 노추(老醜)를 비꼬는 말이다.랍바니 전 대통령은 하미드 카르자이 총리 체제의 과도정부에서 맡고 있는 직책이 없는 데도 대통령궁에 사무실을 마련, 거의 매일 출근하고 있다.
출근하는 명분은 총리에 대한 자문.그는 “총리의 간곡한 청을 받고 대통령궁에 머물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구실일 뿐 권좌에 대한 욕망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다.
랍바니 전 대통령은 탈레반 붕괴 후권력 배분에서 배제됐을 뿐 아니라 자파인 북부동맹 내에서도 40대 신세대 지도자들이 부상하면서 점점 허세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최근 AP 통신과의 회견에서 “지도자의 선택은 아프간 국민들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등 재기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랍바니 전 대통령은 외세를 배격해온 아프간 국민 감정을 간파하고 있다. 지금은 아프간 국민들이 내전의 혼란을 우려, 다국적 군대의 주둔을 용인하고 있지만 갈수록 외세에 대한 반감이 깊어지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슬람 율법 교수 출신인 그가 최근 “아프간의 고통은 외세에 책임이 있다”며 보수적 종교 세력을겨냥한 목소리를 높이는 데에는 이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김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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