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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원기자의 5PM to 9AM] 겨울밤 군고구마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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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원기자의 5PM to 9AM] 겨울밤 군고구마 장수

입력
2002.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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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밤은 길다. 밤의 어둠은 이상하게 식욕을 자극한다.입이 궁금해지는 긴긴 겨울 밤,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수증기가 풀풀 올라오는 어묵과 구수한 팥 향의 붕어빵이 유혹한다.

하지만 꾹 참는다. 그 아랫편 자작자작 장작타는 소리 속에 익어가고 있는 군고구마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골목 어귀에 오늘도 어김없이 자리한 군고구마 수레 앞에 섰다.

“한 열흘 간 장사를 공쳤어요. 겨울인데도 날씨가 따뜻해서 그런지 통 고구마 사가는 사람이 없네요.”

동료 학생 무리와 겨울이면 군고구마를 판다는 박경서(17ㆍ서울 M고 2년)군의 푸념이다.

그는 12월 말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면서 군고구마 수레를 마련했다. 굴뚝을 갖춘 드럼 통에 고구마 굽는 구멍이 세 곳. 제법 과학적인 모양새다.

이 수레를 마련하는 데 든 돈은 거금40만 원. 물론 친구 10명 가량이 돈을 갹출했다. 그래서 그런지 수레 주변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무리가 8명이나 된다.

“어린 학생들에게 우리가 모여있는 모습이 위협이 되지않냐구요? 그런 것 없어요. 아르바이트 해서 겨울 방학 마지막을 멋있게 장식해보려는 것 뿐이예요. 이렇게 장사해도 하루 4만 원을 채 못 벌어요.”

그들은 사흘에 한 번 정도 시장에 나가 고구마를 박스로 사온다. 20㎏ 한 상자에 4만 5,000원. 두 배 정도 이문이 남는다고 했다.

오후 11시가 넘자 4시간 동안의 장사를 끝낸다. “고구마를 많이 사가는 퇴근길 아저씨들이 이제는 드문 시간이예요. 이 시간이 넘으면 대부분 술을 마셔서 여기를 쳐다보지도 않아요.”

생계를 위해 겨울 밤 추위를 견디며 군고구마를 파는 사람도 있다. 서울 지하철2호선 신촌역 앞에서 군고구마를 파는 김모(40)씨.

“겨울이라 공사판 일거리가 없어요. 하루 하루 입에 풀칠하기 바쁜 세상에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요. 자릿세가 비싸서 한 봉지 2,000원 받아도 수입은 변변찮아요.”

그는 추위가 반가우면서도 끔찍하다.

“다른 음식과 달리 군고구마는 밤이 깊어 가야 찾는 사람이 많아요. 다른 계절에는 팔지도 않죠. 적당히 추워야지 매출이 올라요. 사가는 사람에게는 간식거리일지 몰라도 우리는 생계 수단입니다. 그래서 겨울 밤의 추위가 두려우면서도 반가운 것이 현실이죠. ”

거리의 군고구마 장수는 자정이 지나서야 장작불을 끄기 시작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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