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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家의 제상 "소박하게…그러나 기품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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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家의 제상 "소박하게…그러나 기품있게"

입력
2002.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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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과천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 남태령 자락. 19일 오후 그곳에 자리한 한국의 맛 연구회에는 검은색 성장을 한 회원들로 가득했다.1년 전 세상을 떠난 요리 연구가 강인희 선생을 추모하는 기제사(忌祭祀)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기제사는 고인이 죽은 날에 지내는 제사. 1년에 한 번 있는 집안의 큰 행사다.

“실제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한 것은 아닙니다. 강 선생의 1987년 저서 ‘한국의 맛’에 소개된 궁가의 젯상을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한국 전통음식 연구에 이바지한 고인의 뜻을 기리고 더불어 후학들은 제사상 차림을 공부하는 자리입니다.”

한국의 맛 연구회 회장 조후종 전 명지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그의 말대로 이날 행사의 초점은 음식 상차림 재현이었다.

이날 상차림은 궁가(宮家)의 전래 예법에 맞췄다. 궁가는 왕실에서 분가해 독립한 왕자, 공주, 옹주 등 왕실가족을 뜻하는 말.

홍동백서(紅東白西),어동육서(魚東肉西)의 기본적인 원칙에 맞춘 5열 상차림이 생각보다 화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소박하지만 기품이 넘치는 음식들은 깔끔한 인상을 남긴다.

1열에 놓인 음식은 곶감, 밤, 사과, 배, 대추 등의 과실류. 조율이시의 순서로 놓는 게 중요하다. 과일은 세 가지 아니면 다섯가지 등으로 홀수가 되어야 한다.

특히 궁에서는 배 껍질을 다 벗겨서 쓰지만 궁가와 반가에서는 맨 위의 것만 벗겨서 쓴다. 그래서 맨 위에 놓은 배를 꼭지 부분만 깎지 않고 다 깎은 것이 특이하다.

2열의 음식 중에는 삼적이 눈에 띈다. 삼적은 육적, 어적, 소적 등 꼬치로 꿰어놓은 음식. 궁가의 젯상에서는 두부 1모를 통으로 기름에 지져서 적틀에 얹은 소적이 조금은 특이해 보인다.

부회장 이말순씨는 “두부 대신 다시마를 쓸 때도 있다. 육적, 어적, 소적의 순으로 겹쳐 놓으면 된다”고 말했다.

3열에 놓이는 김치는 백김치다. 젯상에 올리는 음식에는 고춧가루를 넣지 않기 때문이다.

면을 잊지 않고 챙기는 것도 일반 제사상과는 차이가 있다. 고비, 도라지, 시금치의 색깔이 조화를 이루는 삼색 나물도 눈에 띄는 음식. 일반 가정에서 쓰는 무나물이나 숙주나물과는 차이가 있다.

젯상에 올리는 밥, ‘메’도 평소에 먹던 밥과는 다르다. 흰 밥을 주발에 단단히 눌러 담고 뚜껑에도 밥을 담아 주발 뚜껑을 덮어야 한다.

그래야 제사 지낼 때 뚜껑을 열고 수저를 꽂아도 쓰러지지 않는다. 고기와 두부, 다시마조각, 무 등을 함께 넣고 끓인 메탕도 제수에서는 빠질 수 없는 음식.

제주로는 주로 맑은 술을 쓰는 것이 한국의 전통이라고 한다.

조후종 회장은 “궁가의 젯상이라고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니다. 주(酒), 과, 포, 혜, 전, 적 등의 기본 음식을 갖추면 된다. 다만 일반 가정에서도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귀찮다는 생각을 버리고 고인을 생각하며 가족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자리로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사음식 중 국, 전, 적만 제사 당일 준비하면 되고 나머지는 평소에 차근차근 마련하면 된다는 것이다.

제사 절차는 성균관 제례에 따랐다. 우선 제사에 사용될 그릇 등을 깨끗이 씻고 미리 마련된 제수를 상에 차리는 척기, 구찬의 의식부터행사는 시작됐다.

제주로 나선 장선용 회장이 향을 집어 향로에 태우는 분향 의식을 치르자 주위는 숙연해진다.

신위를 향해 읍하는 강신, 모두 절을 하는 참신을 거쳐 모든 참가자가 마지막 인사를 올리는 사신 절차를 끝으로 행사는 끝난다.

장선용 회장은 “제사 절차는 집안의 예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번 행사에서는 전통적인 제사 상차림을 재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덧붙였다.

행사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약과와 곳감, 소전, 밤, 매작과 등을 한 보따리 안겨준다.

“반기라고 해서 젯상에 올렸던 음식을 돌아갈 때 한 보따리씩 싸서 주는 것이 한국의 미풍양속이다. 제사라고해서 슬픔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제례 행사를 통해 고인을 추모하며 남은 가족들의 화목을 도모하는 것은 일반 가정과 궁가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장 회장은 말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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