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시민혁명으로 조셉 에스트라다를 축출하고 필리핀 사상 두번째 여성 대통령에 오른 글로리아 아로요(55) 필리핀 대통령이 20일 취임 1주년을 맞았다.당시 국민적 지지없이 ‘에스트라다의 부패’ 라는 반사이익으로 권좌에 오른 아로요의 앞날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정치적 기반은 물론, 대중성을 갖추지 못한 아로요가 필리핀 최대 현안인 가난과 부패를 척결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이날 시민혁명의 현장이었던 마닐라 에드사 사원에서 열린 취임 기념 미사는 이 같은 우려가 현실임을 보여줬다. 수만명의 민주화 열기로 가득했던 1년 전과 달리 사원 주변과 말라카냥 대통령궁 인근에는 며칠째 계속된 비상경계령에도 불구, 아로요 퇴진을 요구하는 수천명의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이 잇따랐다.
좌익 노동자와 학생들은 ‘반역자’ 라는 글귀가 붙은 아로요의 초상을 앞세우고 대통령궁까지 행진을 벌였고, 이슬람이 대다수인 남부 민다나오섬의 마라위에서는 최근 대 테러전을 위해 주둔한 미군에 대한 반미시위로 들끓었다. 군부 쿠데타설도 꼬리를 물었다.
아로요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7,700만 국민 중 40%에 달하는 빈곤층이 여전하고, 에스트라다에 대한 부패혐의 재판이 지지부진한데서 촉발됐다. 여기에 무장 이슬람단체인 아부 사야프를 소탕하기 위해 미군 주둔을 허용한 것이 불신에 기름을 뿌렸다.
아로요의 정통성은 지난해 5월 수천명의 빈곤층 에스트라다 지지자가 대통령궁을 점거하려다 발생한 유혈사태를 계기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6명이 사망한 이 사건을두고 아로요가 정권 장악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대두됐다. 일부에서는 아로요가 국정현안은 제쳐둔 채 2004년 대선을 겨냥한 홍보성 정치행보에만 신경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전쟁을 목적으로 한 외국군의 주둔을 금지한다’ 는 헌법 규정에도 불구, 남부 바실란섬에서 미군과 대규모 합동기동훈련을 계획하고 있는 필리핀 정부가 아부 사야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아로요의 정치생명도 좌우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황유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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