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10만 명. 김기덕(42) 감독에게 그것은 ‘꿈이자 환상’이었다.지금까지 6편의 그의 영화 관객이라고 해야 적게는 몇 천명에서 2만~3만 명이었으니.
‘나쁜 남자’를 찍으면서 오죽하면 배우 조재현이 “10만 명만 들면 한국의 저예산 영화가 발전할 텐데”라고 했을까.
‘나쁜남자’는 그 ‘꿈과 환상’을 하루 아침에 실현시켜 주었다.
개봉 2일 만에 전국 13여 만 명을 기록하더니 20일까지 전국 37만 명이 몰렸다.
김기덕 영화가 달라져서, 이제는 국내관객이 그의 영화를 너그럽게 받아들여서가 아니다.
여전히 그의 영화는 논쟁적이고, 많은 여성들이 외면하거나 혹독하게 비판한다.
그렇다면 ‘조재현 효과’일 텐데. 김기덕도 만나자마자 “김기덕 영화를 인정해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스타(조재현)의 힘이다. 거기에 에로성이 엿보이는 마케팅과 매체의 힘이 ‘이번 영화는 극장에가서 봐야겠다’고 자극했다. 물론 영화 속 ‘나쁜 남자’와 자신, 아니면 여성의 경우 자신의 마음에 남아있는 나쁜 남자와 비교해 보고 싶은 욕구도 있었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흥행’은 좋은 것이 아닌가.
“제작비를 회수해 주는 감독이 됐으니, 이제 안정적인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위험성도 커졌다. 마니아도 더 생기겠지만, 극렬 반대자도 더 늘어나는 것이니까.”
-아닌게 아니라 벌써 여성 관객과 여성계의 비판이 거세다.
“ ‘나쁜 남자’ 는 불량하지만 도덕과 윤리의 또 다른 의식을 비도덕적으로 보여주는 과정이다. 편견에 대한 영화이다. 악과 순수의 대비를 통해 계급, 편견을 허물어 보고자 했다. 처음 한기(조재현)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선화(서원)는 한기의 시선만 보고 폭력으로 단정한다.
한기는 그 편견을 무너뜨리고 자신을 이해시키려 노력한다. 그 이야기를 하는데 창녀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선택했다. 그것을 단순히 물리적인 폭력으로, 여성을 피해자로 보면 역겹고 고통스런 영화다. 내 영화의 핵심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디테일의 부족은 단점으로 남는다. 의도적 무시인가, 아니면 한계인가.
“내영화는 15장면 안에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때문에 비약과 생략이 지나치기도 한다. 한 여자가 창녀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아니다. 때문에 그 과정의 비약은 김기덕 스타일에서 ‘희생’이다.
전체 완성도 측면에서는 불리하지만, 주제와 상황에 집중하게 만든다. 해외영화제가 주목하는 이유도 나의 이런 패턴을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본의든 아니든 ‘나쁜 남자’는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스타 시스템의 덕을 봤다. 앞으로 어떻게 영화를 할 것인가.
“달라질 것이 없다. 여건이 안 되면 전투적, 게릴라적 방식으로 찍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쁜 남자’를 보고 15만 명이 욕을 하고, 5만 명이 내 영화를 받아들인다면 그들과 함께 가겠다. 그들이야말로 나의 자긍심이고 힘이다.
다음 영화는 ‘해안선’이다. 간첩 잡은 사람이 자괴감에 시달리는 이야기이다. 역시 ‘위험한 영화’다. 물론 기회가 주어지면 일본 천황의 뿌리를 박제에서 찾아보는 100억 원짜리 대작 ‘청동거울’도 하겠지만…”
-조재현도 이제는 스타가 됐다. 계속 당신 영화에 출연할까.
“내가 하라면 해야지. 김기덕 없이 조재현은 없고, 조재현 없이 김기덕은 없다. ‘나쁜 남자’도 다른 배우를 찾았는데, 운명처럼 그가 찾아왔다. ‘스타 조재현’에 나도 기여했다. 드라마 ‘피아노’의 억관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의 캐릭터와 비슷하다. ‘빚’을 갚은 기분이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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