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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힘들었던 마흔셋 유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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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힘들었던 마흔셋 유학길

입력
2002.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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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청춘을 바쳐 일했고, 삼성을 열렬히 사랑했으며, 조금도 부끄럼없이 일했다고 자부심을 가졌던 내가 본의 아니게 떠나야 했다.미련과 아쉬움, 슬픔도 컸지만 말없이 미국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1983년.마흔 셋에 유학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의를 알아듣기 어려웠고, 읽어야 할 책의 분량은 너무 많았다.

같은 단어를 몇 번이나 찾을때는 한심한 느낌마저 들었다.

다행히 워싱턴에서 지낸 1년동안 조지타운, 조지워싱턴, 메릴랜드대에서 한 학기씩 강의를 들은 것이 보스턴 ADL의MEI(Management Education Institute)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과정을 이수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청바지 차림의 늦깎이 학생이 20년 연하 학생과 경쟁하는 것은 힘에 겨운 노릇이었다.

힘들때 마다 고국에서 고생하는 가족에 비해 나는 편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머리에 떠올렸다. 사실 아내의 고생과 내조가 없었던들 안정되게 공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도미로 아내는 대학강단을 떠나 제과점을 경영하면서 홀로 가계를 꾸려나갔다.

울적했던 워싱턴의 어느날, 메릴랜드대 교정에서 학교 상징인 거북이 등을 우연히 쓰다듬던 때를 잊을 수 없다.

거북이 등을 자꾸 만지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공부에 대한 열의가 불끈 솟아났다.

20년 가까이 된 지금도 나는 희망과 의욕에 찬 그때의 모습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고 느낄 때 마다 마치 주문이라도 외듯 거북이 등을 쓰다듬으며 각오를 다지다 보면 힘이 생겨나고 새로운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그 날부터 거북이 등을 쓰다듬는 버릇이 생겼다. 심지어 한국에 돌아와서도 미국 생활을 회상하며 거북이 등을 어루만지곤 했다.

이후 나는 더욱 공부에 매달렸다. 집중적이고 강도 높은 코스였지만 새로운 배움의 경지에 접할 때마다 나이를 잊고 학업에 정진할 수 있었고 결국 미국 대학원 우등생 명단이 실리는 ‘Dean’s List’에 이름을 올릴수 있었다.

1985년 8월 졸업식장에서 ‘with excellence’라고 쓰인 학위증을 아내에게 보여 주면서 그동안 수고한 아내에게 빚을 갚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도 사무실과 집에 나무로 깎은 거북이가 있다. 꾸준한 노력의 상징, 거북이는 하느님의 축복어린 선물로 여겨진다.

메릴랜드대 교정의 거북이와의 만남은 그렇게 평생 잊지못할 추억으로 새겨져 있다.

/손병두 전국 경제인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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