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 주석의 전용기인 보잉 767-300기 도청 장치 장착 사건은 미국과 중국 정부의 덮어두기 식 대응으로 외교적 마찰을 비껴가고 있으나 그 진상에 대한 의혹은 점점 커지고 있다.특히 양국은 이번 사건을 강대국간 통상적 첩보전의 연장에서 봉합에 급급한 인상을 줌으로써 양국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관측마저 낳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중국 공산당 내부의 권력 투쟁의 결과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클라크 랜트 주중 미 대사는 21일 "대사관이 공식·비공식으로 중국 정부로부터 이와 관련한 어떤 통지도 받지 못했다"며 논평을 회피했다.렌트 대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목할 사안은 중국의 대량파괴무기 확산과 인권유린,통상문제 등이라고 밝혔다.이에 앞서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부 장관은 20일 "두 강대국 사이에는 공동의 이익이 많다"며 "이 사건이(양국에)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의 침묵도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장치웨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오전까지 외신의 논평 요구에 "알아보고 있다"고만 답했으며,신화 통신 등 언론들도 일절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이번 사건을 둘러싼 양국 관계에 몇 가지 가설을 낳고 있다.우선 미국과 중국이 타협을 시도했을 가능성이다.이 사건에 대한 소문은 실은 중국 당국이 전용기 주문 및 도입에 관여했던 군 장교 등 22명을 체포한 직후인 지난해 9월 무렵부터 전용기 내장 공사에 관여했던 미국 민간업체 등에서 공공연히 나돌았다.워싱턴 포스트는 미국관계자들이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중국 정부의 도청장치 발견을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다.따라서 국가 원수 도청 시도에 대한 비난을 우려한 미국과 세계무역기구 가입 등 실리를 고려,미국과 화해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중국이 정치적 해결을 시도했을 개연성은 농후하다.
중국이 정확한 진상 파악 후 대미공격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를 가졌다는 분석도 있다.이와 관련,파이낸셜 타임스는 중국 당국 조사의 핵심이 미 텍사스주 샌 안토니오에서 전용기에 대한 내장공사가 이뤄지는 동안 중국 관리들이 뇌물을 받았는지에 맞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중국 보안 요원이 24시간 감시하는 중에 도청 장치가 설치됐다면 공모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자오쯔양 전 총서기의 보좌관을 지낸 중미 관계 전문가 워광 홍콩 도시대 교수는 21일 "중국 최고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권력 내부에서 도청 음모가 일어날 가능성이 많아졌다"며 "이번 사건도 중국 공산당 내부의 권력 투쟁의 결과일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1960년대 문화대혁명을 전후해 마오쩌둥 등에 대한 도청이 수차례 행해졌다"며 "이번 사건이 중국 내부 정치 세력에 의해 주도됐다면 권력 교체를 앞두고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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