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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산책] 파시즘 '얼룩' 2회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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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산책] 파시즘 '얼룩' 2회 월드컵

입력
2002.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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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제2회 월드컵 축구 결승서 홈팀 이탈리아에 1-2로 패한 뒤 체코의 골키퍼 안탈 자보는 “졌지만 우리 11명(선수들)은 살았다”고 말했다. 경기 전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승리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내용의 전보를 자국 팀 선수들에게 보냈을 정도로 살벌했던 대회 분위기를 은근히 빗댄 것이다.이탈리아 월드컵은 ‘축구가 국력의 과시수단’으로 이용된 대회로 꼽힌다. 대회 포스터도 오른손을 높이 쳐든 파시스트식 경례를 디자인한 것이었다. 또 이탈리아 담배공사는‘월드컵’이라는 담배를 새로 시판했고, 국제축구연맹(FIFA)패밀리와 참가국 선수들에게는 철도 요금 무료 및 할인혜택을 주었다.

우승국 이탈리아의 전력이 갑자기 강화된 것은 아르헨티나 선수인 올시와 몬티 등공 수의 핵을 귀화시켰기 때문이다. 월드컵 우승직후 이탈리아는 잉글랜드로 원정을 떠났는데 무솔리니는 이때 선수 1인당 150만 파운드의 보너스와 자동차, 병역면제 특혜를 내걸었다.

1950년까지 축구종주국 잉글랜드는 다른 나라와의 실력차를 들어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무솔리니는 월드컵 우승의 여파를 몰아 축구 최강국 잉글랜드까지 제압함으로써 이탈리아의 강함을 입증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5명의 선수가 병원으로 실려가는 난투 끝에 이탈리아는 영국에 패했고, 축구의 국제경기를 중단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무솔리니의 ‘월드컵 이용 정책’이 36년 베를린올림픽을 개최한 독일의 히틀러에게 계승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올림픽서 미국을 제치고 종합 우승한 독일은 패전국의 멍에를 씻고 자신감을 회복했다.

군국적 패권주의가 확산되기 시작한 1930년대 스포츠는 정치에 악용되는, 좋지 못한 선례를 남겼다. 이러한 현상은 이후 70~80년대 아르헨티나등 남미와 아시아국가에서도 나타난다.

한편 1회 월드컵은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 한 곳에서 열렸지만 2회 대회는 이탈리아 8개 도시에서 열려 개최도시가 여러 곳으로 확산된 계기가 됐다. 또 이탈리아는 개최국이면서도 월드컵 지역예선에 참가한 유일한 나라로 기록됐다. 전 대회우승국과 개최국이 자동출전권을 얻게 된 것은 3회 대회부터이다.

유승근

u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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