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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공간경제 새로짜자] 주거양식, 공급논리 벗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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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공간경제 새로짜자] 주거양식, 공급논리 벗자

입력
2002.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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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아파트라고 불리는 공동주택이 우리 도시에 정착하게 된지는 불과 30년밖에 되지 않는다.그럼에도 급속한 도시화와 더불어 대표적 도시주거양식으로 등장한 아파트는 우리의 주거문화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있다.

주거양식의 변화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변화에 기인한다고 보면, 아파트라는 주거 양식은 어쩌면 이 시대문화에 가장 적합한 산물인지 모른다.

수요자 측면에서 볼때, 대도시화와 더불어 도시의 범죄증가는 단독주택 거주를 불안하게 만들어 온 반면, 아파트의 물리적 형태는 범죄에 대한 보안성을 높여 주었다.

또한 핵가족화와 더불어 가정내 주부들의 권한 신장은 주거 유형선택에 있어서 단독주택보다는 관리가 편리한 공동주택을 선호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처럼 공급자가 주도해 온 주택시장에서 아파트 선호의 결정적 원인은 개발의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도시 인구의 급증으로 토지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자 땅값이 급등하였고 그 결과, 공급자의 개발이익 극대화를 위해 고밀화된 공동주택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정부도 정책적 성과로서 주택보급률을 높이고 집 값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고밀개발을 선호해왔다.

지난 10여년간 지속적으로 주택건설에 관한 규제완화정책을 채택해온 정부는 질 낮은 다세대 주택의 양산을 가능토록 했고, 가격을 통제하던 시기에도 초고층 아파트의 분양가격을 저층이나 고층보다 높게 책정해 주었으며, 공동주택 건물간의 인동간격 기준을 완화하는 등 고층ㆍ고밀화를 직간접적으로 촉진시켰다.

고층ㆍ고밀화된 주거유형인 아파트가 이 시대성을 반영한 것이라고는 하나, 주택 유형별 분담에 있어서 과다한 점유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짧은 기간 동안 아파트의 대량건설은 대도시 주거문제 해결에 크게 공헌해 온 것도 사실이지만 이로 인하여 주택의 상품화, 몰 개성화를 초래하였으며 단독주택 중심의 전통적 주거문화를 말살하고 그 대신 우리 도시에 지난 30년간 천박한 투기문화를 조성하였다.

우리 도시에서 아파트가 넘쳐나는 문제는 비단 도시의 정체성과 전통성 상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 환경을 감안하지 않고 지나치게 고밀화, 고층화해가는 아파트 개발추세는 물리적으로도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나친 고밀화는 도로, 상하수도, 학교 등의 기반시설 부족을 가져다주며, 주변과 어울리지않는 지나친 대형화 고층화는 도시경관과 거주환경을 악화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밀화 고층화의 추세는 재건축 추진과 주상복합건물 등장과 더불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가가 높은 서울, 특히 강남에서는 저층 아파트는 물론, 고층 아파트까지도 20년이 넘었다는 이유와 더 높은 밀도로 지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멀쩡한 건물들을 허물고 있다.

재건축 단지마다 자기들이 살고있는 아파트가 구조안전진단 결과 안전치 못하다는 판정이 났음을 경축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있는 광경은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주상복합건물의 경우 이러한 추세는 더욱 극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원래 기존도심 공동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장려되어 온 주상복합건물은 이제 고수익 상품이 되어 상업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라면 어디든지 마구잡이로 등장하고 있다.

서울 도곡동 양재천변의 경우, 현재 지어지고 있는 50~60층의 초고층 건물은 주변의 15층아파트는 물론, 같은 단지내의 25층짜리 초고층 아파트까지도 왜소하게 보이게 하며, 엄청난 위압감과 더불어, 머지 않아 닥쳐올 이 지역 교통난을 예고하고 있다.

업무나 상업용도의 수요가 고층부까지 미치지 못하는 신도시에서도 개발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법으로서 주상복합건물들이 난개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신도시의 자족성은 오히려 낮아지고 예상치 않았던 고밀주거의 등장으로 각종 기반시설 부족과 교통혼잡 현상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주거유형의 다양성이 상실되어가고, 고층화 고밀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이러한 모습은 이미 선진국 도시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우리 도시만의 특징이다.

그러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다양성이 존중되고, 요구되는 21세기에는 거주환경과 주거문화에서도 다양성과 정체성이 요구될 것임이 분명하다.

토지자원의 한계와 인구증가로 아파트가 앞으로도 가장 보편적인 주거양식이 될 수밖에 없지만, 지금과 같은 획일적 형태의 고층ㆍ고밀 개발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번 만들어진 주거양식은그 양식을 만들어 낸 사회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난 10여년간 만들어 논 고층 고밀 아파트는 경제적으로 재건축 가능성이 낮아서 붕괴우려가 없는 한, 앞으로도 40~50년간 우리 도시에 큰 짐으로 남게 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우리도 다양한 거주환경에서 살 권리를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주거문화를 배양해 나가야 한다.

더 이상 공급자의 경제논리가 우리 주거환경의 미래를 결정토록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으로는 주택양식이 삶의 방법을 지배할 것이 아니라 삶의 방법이 주택의 양식을 지배하도록 해야만 한다.

/안건혁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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