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을 없애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 입니다.”대표팀 최고참 황선홍(34ㆍ가시와 레이솔ㆍ사진)은 이제 더 이상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라는 수식어를 원치 않는다. 20일(한국시간) 미국과의 골드컵 첫 경기에 최용수와 투톱으로 출격 명령을 받았지만 그는 이미 골 욕심을 접고 백의종군을 결심한 지 오래다. 1994년 월드컵서 별다른 활약을 못 했고 98년 대회는 부상으로 벤치를 지켰던 황선홍으로선 이번 2002 월드컵만은 자신의 축구인생에 큰 획을 긋고 싶은 것이다.“저는 아마 최전방 원톱으로 뛰기 힘들겁니다. 워낙 쟁쟁한 후배 공격수들이 많지 않습니까.” 지난 해 5월 컨페더레이션스컵을 앞두고 히딩크 사단에 합류한 그가 지금까지 대표팀에 살아남을 것이라 확신한 이는 사실 드물었다. 히딩크 감독이 30대의 노장인 그를 체력부담이 심한 처진 스트라이커로 내세웠을 때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상대 수비형 미드필더의 공격가담을 저지하고 골 찬스를 만들어 내는 임무를 완벽하게 소화해 히딩크 감독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
사실상 미드필더와 흡사한 역할을 수행하느라 “체력소모가 막심하다”고 털어놓은 그는 “히딩크 축구에 투톱이란 없다. 감독이 원하는 역할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 지상과제”라고 말했다.
황선홍은 처진 스트라이커 뿐 아니라 측면 미드필더의 역할도 충분히 소화해낼 자신이 생겼다고 한다. 요즘 컨디션이 최상이라 “부상 징크스는 아예 생각도 않는다”며 의욕을 보인다.
체력관리가 가장 중요하지만 그에겐 오히려 마음을 조절하는 일이 더욱 급하다. “월드컵 전까지 정신수양을 위해 책을 많이 읽고 싶다. 걷는 일, 밥먹는 일 등 생활을 항상 천천히 하려는 것이 새해 결심”이라고 말한다. 모든 일을 천천히 하면 컨디션 조절과 집중력 배양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
황선홍의 또 다른 바람은 절친한 동료 홍명보(33ㆍ포항)의 복귀다. “홍명보는 한국축구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며 “한국축구의 얼굴인데 당연히 발탁되지 않겠느냐”고 기대한다.
황선홍의 부탁 한가지. “월드컵에서 몇 골이나 넣고 싶냐고요? 이미 마음을 비운지 오래됐으니 이젠 저에게 골을 기대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A매치 92경기에서 통산 47골을 뽑아낸 골잡이의 본능은 여전했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까지 A매치 50골은 꼭 채우고 싶습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