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하는 일은 없어요. 내부 규정 정비하고 영업점 직원 교육하는 것 정도죠. 조금 과도하게 나서면 감사위원회와 충돌이 일어납니다.” (A시중은행 준법감시인)감사위원회와 준법감시인제로 이원화한 금융기관 내부감사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잇따르면서 “두 기구의 역할 설정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자 금융당국이 제도 재정비에 나섰지만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유명무실한 준법감시인제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준법감시인 제도가 국내 금융기관에 도입된 것은 2000년4월. 금융당국은 은행을 비롯해 증권, 보험, 신용금고 등 금융기관에 차례로 준법감시인 도입을의무화했다.
물론 상법상 감사위원회가 설치돼 있지만 이는 업무와 회계 등에 대한 사후 감독 역할인 반면 준법감시인은 사전 내부 통제 역할을 맡아야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애매모호한 역할 설정과 감사위원회의 기득권에 밀려 준법감시인은 내부 규정을 손질하는 정도의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했다.이에 따라 은행권의 경우 행장 직속으로 다른 은행 업무와 겸직하지 못하도록 한 권고 규정에도 불구하고 조흥, 신한, 제일 등 일부 은행은 내부임원이 준법감시인을 겸직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국민, 하나, 한미, 서울 등은 부장급 이하 직원에게 준법감시인의 직무를 맡겨 준법감시인의한계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팀장급 한 준법감시인은 “금융당국 고위직을 거친감사의 기존 업무 영역을 넘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게다가 준법감시인 역할이 끝나면 다시 본 업무로 복귀해야 하는데 어떻게 객관적으로 감시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 메스 들이 댄 금융당국
“선진국의 제도를 앞 뒤 재지 않고 서둘러 도입하다보니 부작용만 크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금융당국은 내부 감사시스템 재정비에 들어갔다.
금융감독원은 시중은행 직원들과공동 테스크포스(T/F)팀을 구성, 감사위원회와 준법감시인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하고 ‘법규 준수 프로그램’을 도입해 의무적으로 이행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금융기관의 내부감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것이 감사와 준법감시인의 알력 탓으로 비춰져왔다”며 “하지만 이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인 만큼 선진국 모범 사례를 토대로 법규 준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1ㆍ4분기 중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스템 재정비의 효과는 불투명하다. 금융연구원 김동환(金東煥)부연구위원은 “최고 경영자의 인식 개선 없이 선진 시스템으로 재정비한다고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독립적인 외부 전문 인력을 감사위원회와 준법감시인으로 대폭 충원해야 객관적인 감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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