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검찰의 위기는 정권의 시녀역할을 했던 우리 스스로의 업보입니다.”1999년 항명파동으로 면직됐다 지난해 복직한 심재륜(沈在淪ㆍ58ㆍ사시7회) 부산고검장이 18일 오후가진 퇴임식에서 현정부와 검찰을 비판하는 강도 높은 발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심 고검장은 퇴임사에서 먼저 검찰의 위기상황을 “권력의 공유 내지 신분적 상승을 위해 권력의 주변에서 무리를 지어 줄을 섰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의 입맛에 맞게 앞장 서 충실한 ‘시녀’역할을 수행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김영삼(金泳三)정권 말기의 한보사건 수사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의 아들인 현철(金賢哲)씨를 구속했던 사실을 거론하면서 “당시 검찰 조직 전체가 혼연일체가 돼 온갖 권력의 외압으로부터 검찰 본연의 위상을 지켜냈다”고 회상한 뒤 “그러나 정권 전환기에 일부 정치성 검사들이 비열한 행태를 보인 결과,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받게 됐다”고 일갈했다.
심 고검장은 최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검찰의 잘못 때문에 정부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언급한것과 관련, “검란(檢亂)의 원인과 배경은 거듭된 검찰인사의 잘못과 검찰권에 대한 간섭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사권자인 정부 최고책임자의 책임 가장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가 마치 전체 검사가 잘못한 것처럼 호도하면서 정부는 무관한 것처럼 책임을 전가하는 발상과 주장에는 전혀 공감할수 없으며, 이는 국민으로 하여금 검찰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검찰의 중립과 독립은 특별수사검찰청 같은 일부 조직의 명칭이나 바꾸고 물을 타는 식의제도변경이라든가 지방색의 부분적 안배와 같은 인적교체를 통해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며 최근 정부와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미봉적인 검찰개혁방안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검찰의 독립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희생이 수반돼야 하며, 검찰의 독립을 위해 필수적인 이러한 고통은 이제 여러분들의 몫”이라며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심 고검장은 간결한 어조로 퇴임사를 읽어 내려갔으나 가끔씩 감정이 북바치는 듯 말을 끊고 먼 곳을바라보기도 했다. 심 고검장이 퇴임사에서 강도 높게 검찰을 비판하고 자성을 촉구하자 참석한 검찰 관계자들은 대부분 숙연한 표정으로 경청했으며 일부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비장한 표정으로 10여분만에 퇴임사를 마친 심 고검장은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 뒤 곧바로 청사를 빠져나가34년 간의 검사생활을 마감했다.
한편 그는 퇴임식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2월 정기인사를 앞두고 후배들에게 길을 터 주고 흔들리는 검찰의 쇄신을 위해 사퇴를 결심했다”며 “명예로운 검사로 남고 싶다”고 밝혔다.
심 고검장은 “지난해 8월 검찰사상 첫 무보직 고검장으로 복직할 당시 일정기간이 지난 뒤 명분이 쌓이면 조직을 떠나겠다고 밝혔던 만큼 지금이 적당한 시기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검찰총장 인사와관련, “총장에 대한 욕심은 추호도 없었다”며 ‘검찰총장을 기대하다 무산되자 퇴임한 게 아니냐’는 일부의 시각을 일축했다. 심 고검장은 “당분간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쉴 생각”이라며 변호사 사무실을 열지 않을 뜻을 비췄다.
김창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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