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8시 미국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은 돌연 "(1년 넘게) 한국 정부와 벌여온 현대투신 인수 협상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하지만 정부측협상실무를 맡아왔던 금융감독위원회는 불과 10여시간 전인 16일 밤 "현투 매각이 결렬 위기를 맞았다는 국내언론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는 정반대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근영(李瑾榮) 금감위원장도 직접 나서 "협상결렬 보도는 명백한 오보이고, 언론은 제대로 중계하라"며 언론에 화살을 돌렸다.
그러나 17일 아침 외신을 통해 AIG측의 결렬선언을 전해들은 금감위는 부랴부랴 대책회의를 소집, "우리도 협상종료를 선언한다. 국민들께 송구스럽다"고 발표했다.
하룻밤새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정부의 협상 태도는 2000년말 현대그룹에서 협상 바통을 이어받은 이후 늘 이런 식이었다.
주도적으로 일을 끌어가기는 커녕 늘 밀리고 밀려 양보만 거듭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G가 지난해 8월 "현대증권 신주 인수가를 깎아주지 않으면 발을 뺄 수도 있다"고 밀어붙일 때도 "언론 플레이에 불과하다"며 안이하게 넘기다 보름도 안돼 모두 수용했다.
AIG가 국내홍보대행사를 동원, 국내언론 동향에서부터 현대증권 노조의 움직임까지 하나하나 모니터하며, 수시로 전략을 수정할 때도 정부 관계자들은 구경꾼처럼 "AIG가 여간 무서운 상대가 아니다"는 감탄사만 되풀이했다.
한발 한발 양보만 해오다, AIG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지경까지 몰아붙이자 결국 "도저히 못하겠다"며 두손을 든 정부의 자세는 AIG의 저열한 상술보다 결코 나을 게 없다.
이근영 위원장은 결렬선언 직후 "손해보는 장사는 못한다. 우리도 협상을 종료한다"고 뒤늦게 체면을 챙겼지만 제값받고 파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첫 단추를 잘못 꿴 셈이다.
AIG케이스는 말그대로 반면교사다.
유병률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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