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치원 영어 교육이나 조기유학 열풍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영 착잡해진다.일제시대 때 소학교 다니면서 일본어를 안 쓰고 조선인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애썼다는 아버지 말씀이 영 미덥지가 않은 것이다.
지금들 하는 꼬락서니를 봐서는 다들 잘난 줏대 세우기는 커녕 형편 닿는 대로 조기 일본 유학을 보내서라도 남보다 한 발짝이라도 먼저 조선말을 잊으려고 열 올리지 않았을까?
한글도 그렇지만, 우리 옛것의 소중함도 늘 남들이 먼저 알아차리고 깨우쳐주는 것 같다.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최미경 옮김ㆍ눈빛 발행)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프랑스 작가 루이 마랭이 1900년께 한양에서 찍은 사진에다 여행가 조르주 뒤크로가 글을 써서 붙인 책이다.
글과 사진을 넘기면서 뼈 속 깊숙이 나의 DNA가 아프게 잡아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삿짐 꾸리다 말고 장롱 밑에서 먼지 뒤집어 쓴 낡은 사진을 주워들고는 갑자기 무릎에 맥이 풀려버린 심정이랄까.
1900년이라면 조선의 운명이 열강의 발톱 아래 신음하던 때다. 또 독일 고고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의 무덤을 파헤쳐서 황금의 기억을 발굴하느라 부지런히 삽을 휘두르던 때다.
그러나 이때 프랑스 나그네는 먼 동방의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에 찾아든다.
그의 기록은 로마 제국의 몰락처럼 장엄하지도 않고, 타이타닉의 침몰처럼 비극적이지도 않다. 그저 맵고 아릿한 여운을 남길 뿐이다.
내세울 것 하나 없이 몸과 마음이 가난한 나라. 그러나 느릿느릿 꿈꾸는 눈빛을 가진 사람들.
조르주 뒤크로는 브르타뉴 시골 사람들하고 꼭 닮은 조선 사람의 생김새에 감탄하는가 하면, 땟국 흐르는 아낙네들의 이마 아래 우수 어린 눈썹을 발견한다.
그런 안목이 참 부럽다. 그가 본 조선 사람들은 원시인의 태고적 풍경을 얼굴의 능선에 간직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그게 정말 우리의 모습이었나?
“그건 아주 오래된 사진이었다.”- 롤랑 바르트.
/노성두 서양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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