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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미리 가 본 월드컵도시] (3)스웨덴인 울손의 울산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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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미리 가 본 월드컵도시] (3)스웨덴인 울손의 울산 탐방

입력
2002.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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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기가 울산 상공을 선회할 때 많은 공장과 굴뚝에서 뿜어내는 자욱한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울산은 처음이었다. 출발에 앞서 세계적인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한국편을 뒤져봤으나 면적이 서울의 1.7배인 울산을 찾을 수 없었다.울산은 의사소통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공항 안내소 직원은 영어가 유창했다. 택시에서도 ‘I want to go to the City Hall(시청 갑시다)’이라고 하자 운전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How long will it take?(얼마나 걸릴까요)’라고 물으니 ‘thirty(30분)’라고 응수했다. 물론 호텔을 제외한 음식점이나 상점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힘들었지만 이 정도면 서울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울산에서 월드컵을 치르는 참가국은 하나같이 축구광이지만 영어에 익숙한 나라는 아니다. 6월1일 덴마크-우루과이, 6월3일 브라질-터키, 6월21일은 8강전이다. 스페인, 브라질, 터키는 울산에 훈련캠프까지 차린다. 시청에서 만난 월드컵기획과 김선조과장은 “현대중공업에 선박을 발주한 20개국 600여명의 선주 감독관이 주요 외국인사의 의전과 통역을 맡는다”고 자랑했는데 일반 관람객과 비영어권 사람들을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혼란스러운 것은 표지판이다. 경기장으로 가는 도중 ‘Exprwy’ ‘Post ofc.’ ‘Police sta.’등 쓰다만 영어가 눈에 띄었다. 이런 표현은 정확한 영어로 서둘러 고쳐야 할 것이다. 울산과 연이어 있는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보니 경주가 ‘Kyungju’와 ‘Gyeongju’로 섞어서 쓰이고 있었다. 2000년 7월 로마자표기법을 개정한 탓이라는데 인터넷으로 호텔을 예약하거나 이 도시에 관해 알려는 외국인에게는 혼란스럽다. 역시 빨리 통일을 해야 한다.

왕관(crown)모양의 울산 문수경기장은 자연호수, 산책로 등이 완비된 매우 현대적 시설이었다. 하지만 독일 축구영웅 프란츠 베켄바워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이라는 논평에 동의할 수 없다. 콘크리트, 철골, 플라스틱으로 엮은 인위적 잿빛 건물은 삭막했다. “자연스런 건축물이었다면….”

경기장을 둘러보면서 “한국을 모르는 외국인으로 이곳에 왔다면?”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축구경기는 90분에 불과하다.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 보낼까? 숙박과 음식은? 외국인에게는 역시 먹고 자고 보는 것이 문제다.

울산에는 관광할 만한 곳이 별달리 없다. 그 흔한 면세점도 하나 없다.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가 전부였다.

고 정주영씨의 호를 딴 아산로를 따라가니 조선소와 석유화학산업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석유화학단지는 울산의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현대중공업 시설을 봤을 때는 잠시 놀라움과 착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1972년 이 공장 건설이후 스웨덴의 조선업은 엄청난 위기를 겪으며 몰락했다. 하지만 웅장한 규모의 이 공장은 외국인을 매료시키기에 손색이 없었다.

울산시는 관광거리로는 차로 1시간 거리인 경주 불국사나 양산 통도사를 제시했다. 그런데 중국에 오래 머물렀던 탓인지 한국이 자랑하는 불국사, 에밀레종이 있는 경주박물관은 인상적이긴 해도 큰 감흥은 없었다. 솔직히 경주는 외국인의 눈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일본과 중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문화유적보다는 지금 살아가는 모습을 관광상품으로 내거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런데 울산은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공장과 아파트 촌으로 이뤄진 아주 단조로운 도시다. 시내에는 멋진 바와 레스토랑이 있었지만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즐길 곳이 없었다. 바닷가의 회촌은 음식값이 너무 비쌌다. 그리고 한국식 회는 외국인의 입맛을 당기지 못한다. 울산을 찾은 외국인이 축구 관람 아닌 다른 시간, 특히 밤시간을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와 다양한 장소가 생겨나야 할 것이다. 이는 울산시의 외화수입과 직결될 것이다.

월드컵 기간동안 울산을 찾을 관광객은 13만명 정도라고 한다. 울산에는 현대호텔과 롯데호텔을 제외하면 고급 숙박시설이 별로 없다. 이 마저 외국 선수단이 예약을 끝내 일반 관람객은 모텔을 찾아 헤매야 한다. 울산역 주변에는 많은 모텔이 건설중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외국인용인가 하는 것이다. 시청에서도 모텔측이 “낮 시간에 손님을 받지 못한다”는 ‘한국적’ 이유로 외국인 숙박을 거부할까 우려하고 있었다. 월드컵기간 중에는 숙박업소에 각종 인센티브를 제시하겠다지만 대안이 필요한 것 같다.

외국인에게는 먹는 것도 스트레스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는 아침 먹을 곳이 없었다. 아침식사가 되는 곳은 현대호텔과 롯데호텔 뿐, 해돋이를 보기위해 정자 해수욕장으로 갔으나 커피 한잔 마실 곳이 없었다. 쫄쫄 굶은 뒤 오전 10시30분이 지나서 허름한 휴게소에서 한국식 독한 커피와 맛없는 빵 한 조각을 먹을 수 있었다. 울산에서 경기를 치르는 국가의 사람들이 바라는 아침식사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맑은 커피와 빵, 잼, 버터, 스크램블드 에그 정도면 된다. 오전 8시 정도면 간편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많아져야 한다.

10살 때인 1958년, 고향인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열렸던 월드컵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40여년만에 지구 반바퀴를 돌아 한국 땅에서 월드컵을 보게 된다. 울산에서 열리는 경기도 많은 추억거리를 남기는 월드컵이 되길 바란다.

●필자 소개

스벤 울로프 울손

한국외국어대 스칸디나비어어과 교수. 1948년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태어나 스웨덴 룬트대학에서 노르딕어를 전공했다. 이후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덴마크어와 스웨덴어를 강의했다. 1997년에서 1999년까지 중국에서 교수를 지냈다. 부인이 중국인이다.

■숯불고기 주문 갈비탕 나와

한국 음식점을 찾았다가 주문한 것과는 다른 음식을 만났다.

메뉴판만은 한글, 영어, 일어, 중국어로 깔끔하게 적혀있었다. ‘Fresh meat on charcoal(숯으로 구운 신선한 고기)’을 주문했다. 숯불고기 정도로 생각했다. 아뿔싸, 종업원이 들고 온 것은 갈비탕. 주문을 잘못했나 싶어 메뉴판을 다시 보니 ‘Fresh meat on charcoal’ 위에 ‘갈비탕’이라고 쓰여있었다. 식당 지배인을 불렀더니 “시청에서 시내 각 음식점에 배급한 메뉴판”이라고 설명했다. 갈비탕이라면 ‘rib soup’ 정도로 표현해줄 수 있다. 한영사전에는 ‘beef-rib soup’으로 되어있다.

냉면은 이 식당 메뉴판에는 ‘Noodle in chilled broth(차가운 국물국수)’였다. 울산시가 펴낸 ‘울산의 맛과 향기’라는 책자에는 ‘Buckwheet vermicelli served in cold soup(차가운 국물이 있는 메밀국수)’로 되어있다. 일관성이 없다. 사전에는 냉면이 ‘cold noodle dish’, ‘iced vermicelli’이다. ‘Double noodle in chilled broth’(냉면곱빼기)라는 표현도 어색했다. ‘ double size …’나 다른 표현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곳곳에 오자도 보였다. 어느 나라 음식이건 영어로 표현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턱없이 틀리거나 전혀 엉뚱한 것이 나와서야 되겠는가. 이름을 깔끔하게 번역하지 못한다면 음식 사진이라도 싣도록 지도해야 할 것이다.

■공원에 캠핑장 만들면 숙박문제 해결 도움될것

울산시에는 고급호텔이 적다. 울산시는 2급이상 호텔 26개소를 비롯, 모텔 등 중저가 숙박시설들을 월드컵업소로 지정하고 기업체 연수원, 수련원, 사찰 등 8개소도 확보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월드컵이 치러지는 도시에서는 늘 숙박시설이 모자라 관람객들이 고통을 겪거나 바가지요금이 극성이었다.

숙박문제 해결방안을 하나 제시한다면, 공원 등을 외국인들의 숙박 캠프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외국인 축구 팬들이 그렇게 부자는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축구만큼 보통 사람들이 경기장을 자주 찾는 운동 경기는 없다. 따라서 공원을 훌륭한 캠핑장으로 이용할 수 있다. 텐트도 치고 침낭에 의지해 노숙도 할 수 있다. 계절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시는 숙박용량이 충분하고 캠핑장이 훌리건의 집합소가 될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브라질이 터키에게 패하지 않는다면 훌리건 걱정은 접어도 된다. 몸을 형형색색 물들이는 덴마크 응원단 역시 골치거리는 아니다. 오히려 볼거리다. 서울시는 ‘훌리건’가능성이 있는 국가의 관람객들을 여러 캠핑장에 분산 수용할 것이란다.

인천의 경우 송도유원지, 인천대공원, 문학경기장 야영장 등에 캠프를 설치하고 자동차를 타고 캠핑을 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중이다. 광주도 서구 치평동 상무시민공원에 텐트촌을 설치할 계획이다. 또 인근 공터에 야시장도 개설한다. 서울 역시 서울대공원수련장, 난지도캠프장에 외국인 관람객의 캠프를 허용한다. 제주 중문해수욕장과 돈네코관광단지 등도 외국인 캠핑장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다른 도시에서는 이처럼 캠핑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캠핑장에서는 물론 취사도 할 수 있다. 각 시에서는 간단한 먹거리도 준비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월드컵의 밤을 ‘손님들의 축제’로 유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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