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하철을 타고 강남을 가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신문을 활짝 펼쳐들길래 요즘 신문을 도배하다시피 하는 각종 ‘게이트’기사를 읽는가 싶었는데 그 청년은 신문 하단의 작은 구인광고에만 눈길을 주고 열심히 메모를 하다가 그만 장탄식(長歎息)을 쏟아냈다.“왜, 희망이 없어요?”라고 물어보니 자기 같은 신규 대졸자는 경력이 없어 자격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숨이다.
요즈음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권력층의 비리와 부패는 분노와 박탈감을 더해주고 있지만 고등학교나 대학의 문을 나서는 청년들은 그들을 반기는 일자리조차 구할 수 없어 어두운 터널에서 헤매고 있다.
청년실업 가운데 대졸실업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2002년 전국 각 대학교의 실질취업률이 평균 20%를 밑돌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과 함께 그 심각함이 통계로 증명되고 있다.
신규 대졸자의 2001년 3월 실업률은 28.8%로서, 1999년의 27.6% 보다 더 나쁜 ‘최악’의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실업률 통계에 허수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대학문을 나서는 자치고 제대로 된 직업을 잡는 자는 10명 중 한 두명에 불과하다는 현실이다.
대학을 가려고 과외에다 학원에다 그렇게 많이 투자하였건만 투자의 결실은 고사하고 대부분 실업자를 양산하는 그야말로 ‘고비용 저효율’의 표본이다.
오늘날의 대졸 취업난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취업구조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다.
왜 경기는 점차 좋아지고 있다는데 취업은 이리 어려운가? 우선 주요기업과 금융기관의 채용방식에 주목하여야 한다.
IMF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은 과거 대규모 채용방식에서 벗어나즉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자 위주의 소수핵심인력 채용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과거에는 ‘투망식’ 채용이었지만 오늘날은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찍어 뽑는 ‘작살식’ 채용을 한다.
인터넷 보급으로 인하여 이 추세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주요 기업의 신규 및 경력직 채용비율도 5년 전만 하여도 신규대졸자의 비중이 과반수 이상으로 높았으나 2001년에는 경력자의 비율이 거꾸로 74%를 점하고 있다.
거기다가 대학진학률은 꾸준히 증가하여 대졸인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는데 비하여 기업체는 구조조정의 여파로 일자리가 대폭 줄어들었으니 신규대졸자가 진입할 문은 빈틈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30대 재벌기업만 하여도 1997년 대비 20여만개의 일자리가 감소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체나 금융기관이신규채용시 연령제한부터 조속히 풀어야 한다.
30번 이상 취업지원을 하다 나중에는 나이제한에 결려 능력불문하고 취업시장에서 퇴출되어야만 한다는 지방대학 출신자의 절규에 귀기울여야 한다.
또한 정부는 전국의 권역별로 취업알선센터를 조직화하여 취업에관한 모든 정보와 서비스를 기업체 및 구직자에게 적시에 제공하고 또 서로 연결하여 주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올해는 월드컵 등 국제적 행사가 유난히 많은 만큼 대학생들에게 노동의 기쁨을 경험하는 단기 일자리 창출도 필요하다.
한편 대학은 현실과 유리된 교육 때문에 기업체로부터 비난받을 것이 아니라 실무와 연결되는 교과목 개발과 함께 현장실습을 대학교육과 연계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여야 한다.
'인턴십' 프로그램을 이수한 자에게 일정한 학점을 부여하거나 고학년 '인턴휴학제'의 도입도 고려할 만하다.
장기적으로는 중고교 때부터 인생설계를 구체화할 수 있도록 진로지도 전담교사제를 도입하여 청소년들이 자기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수능시험 성적에 맞추어 무턱대고 아무 대학의 아무 과나 지원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여서는 안된다.
골목어귀에 나부끼는 '청소년은 나라의 미래'라는 플래카드가 차가운 날씨만큼 썰렁하게 보이는 때이다.
/백태승ㆍ연세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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