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축구가 너무 좋아 5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학생들과 경기를 하다가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주책(?)을 부리고 다닌다. 오죽하면 동료 교수들이 ‘운동권교수’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을까.돌이켜 보면 축구 때문에 많이 다치기도 했지만 덕을 본경우도 많았다. 대학 졸업 후에 늦게 시작한 군대생활도 '분데스리가' 못지 않은 '군대스리가' 덕분에 즐겁게 보냈다. 미국에서의 유학생활도 축구 덕분에 모든 일이 잘 풀리고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유학생활을 시작한 다음해 봄, 대학신문에 교내축구대회 공고가 실렸다. 낯선 환경과 어려운 공부, 그리고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향수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나는 구원의 메시지를 읽는 기분이었다.
부랴부랴 한국 유학생들을 끌어 모아출전신청을 했다. 팀 이름은 'Korean Hot Peppers'로 지었다. 그런데 첫 경기에 나선 우리는 깜짝 놀랐다. 상대 팀에는 여학생이 두 명이나 있지 않은가? 대부분의 참가 학생들은 즐기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인 듯했다.
어쨌든 우리는 첫 경기를 5:1로 이겼고 나는 다섯 골을 모두 득점하였다.‘어린아이 손목 비틀기’ 같아서 계면쩍은 기분도 들었지만 기분이날아갈 듯했다. 얼마 만에 다시 만난 축구인가! 또 얼마 만에 맛보는 골 맛인가!
그런데 더 신나는 일은 다음날 벌어졌다. 학교신문에 내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것이다. 사진 아래 'He's a Pepper'라는 큰 제목과 함께 "한국서 유학 온 대학원생 김명환이 프리킥을 하고 있다. 그의 팀은 첫 경기에서 5:1로 승리했다"는 설명이 달려 있었다.
기숙사는 물론 내가 다니던 수학과의 게시판에도 누군가가 그 사진을 오려붙였고, 언론의 엄청난 위력 덕분에 나는 갑자기 유명인사가 되었다. 어딜 가든 나를 알아보고 "Hi, Pepper"라고 인사를 건네 오는 바람에 나의 별명은 곧 'Pepper'가 되었다.
우리 팀은 준결승에서 2:1로 패하고 말았지만 그 후부터 'Pepper'의 유학생활은 축구가 주는 즐거움으로 순풍에 돛단 듯 모든일이 잘 풀려 나갔다.
지금도 나의 연구실에 걸려있는 빛 바랜 그 사진을 보고있노라면 온 몸이 근질근질해 진다.그러면서 나의 축구사랑에 부족함이 없는지 되돌아 보곤 한다. 요즘 언론은 월드컵 16강을 지상과제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16강을 소리 높여 외치기 보다는 자원봉사에 나서고, 수준 높은 월드컵 축구를 즐기는 것이 진정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다 즐기자고 하는 일이 아닌가./김명환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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