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쯤 한 상가(喪家)에서 우연히 신승남(愼承男)씨를 만났다.대검차장이었던 그는 한달여를 앞둔 검찰총장 인선에서 유력한 후보였다. 바싹 곁에 다가앉은 그는 "많이 도와달라"고 말을 건네왔다.
의례적인 인사말 같기도 했지만 나는 "총장이 되시는 것은 쉬울 것 같은데 되시고 난 다음이 어려울 것 같다"고 받았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 했다.
15일 퇴임식을 하고 서초동 대검청사를 떠난 신씨는 8개월도 못되는 동안 검찰총장으로서 가시밭길을 걸었다.
이미 레임덕 현상이 두드러진 호남 정권의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호남 출신 인사가 임명되었을 때부터 예견되었던 일이다.
그 자신도 총장에 취임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는지 분명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명석하고 합리적이며 누구보다도 검찰업무에 정통한 그도 어쩌지 못하고 끝내 물러났다.
어쩌면 영남정권에서 총장이 되었다면 훌륭한 족적을 남겼을 사람이다.
검찰이 또다시 '검란'(檢亂)을 맞고 있다.
온 사회가 "검찰을 믿지 못하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검찰 개혁을 논의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검찰의 위기'가 반복되고 있고 그때마다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특별검사제의 상설화 등 처방이 제시됐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됐다.
검사들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마음을 되잡기를 한두번 한 게 아니다. 정말 검찰은 '검란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
가장 큰 책임은 역시 대통령에게 있다. 검찰의 조직과 업무등 기본골격은 독재정권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총장을 포함한 모든 검사의 임면권(任免權)이 대통령에게 주어져 있고 아직도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검사 동일체의 원칙이니 상명하복의 질서니 하는 것들은 모두 독재체제에서 그 효율성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에서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30년 가까운 세월동안은 별 탈이 없어 보였다.
검찰의 업무에서 '정의구현'보다는 '정권의 이익 실현'이 강조되었고 인사에서도 호남이 철저히 배제되는 등 왜곡된 모습의 검찰이었지만 밖으로는 조용했다.
외부로부터 '독재의 수호자'라는 비난은 받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위기상황은 없었다.
역설적이지만 민주화의 상징인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부터 '검난'은 나타나기 시작했고 현정권이 들어선 이후 더욱 증폭돼가는 느낌이다.
오랜 민주화 투쟁의 기간 동안 누구보다도 독재정권의 박해를 많이 받았던 YS와 DJ가 대통령이 되었는데도 오히려 검찰의 위상은 실추를 거듭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검찰을 '통치의 수단'으로만 여겼을 뿐 '독재시대의 검찰'을 구조적으로 개혁하는 데까지 관심이 미치지는 못했다.
고작 개혁이라고는 이전의 정권 아래서 '잘 나갔던 사람'을 배제하고 '자기 사람'을 전진배치하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YS정권 때는 부산ㆍ경남 출신의 검사들이 유달리 두드러져보였고 DJ정권에 들어서는 호남 출신 인사들이 약진했다.
하지만 건국 이래 김태정(金泰政)씨가 최초의 '호남 총장'이었을 만큼 호남쪽 인사가 발탁된 예가 드물었기 때문에 더 눈에 띠었다.
점차 능력보다는 출신지역이 인사의 주요 기준이 되는 것처럼 비쳐졌고 일각에서는 '엽관제'(獵官制)를 언급한다.
이쯤 되면 검찰은 도저히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킬 수가 없다.
정권의 장기집권을 전제로 만들어졌고 익숙해진 검찰로서는 정권교체의 상황을 따라가기 힘들다.
따라서 '검란의 쳇바퀴'를 깨기 위해서는 우선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그래서 민주시대에 맞는 조직과 제도,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을 바꾸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친다면 그것은 그때뿐이고 시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면 '검란'은 또 온다.
신재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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