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세계일원이 되길 원하는지 自問해야"≪2002 한일 월드컵의 한국측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정몽준(鄭夢準) 의원(무소속ㆍ통일외교통상위)과국제관계 전문가이자 ‘역사의 종언’의 저자로 유명한 프란시스 후쿠야마(미국 존스 홉킨스대) 교수가 15일 문명과 종교, 테러 및 월드컵 등을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대담은 이날 오후 서울 롯데 호텔에서 1시간 30분 동안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됐으며 주로 정 의원이 묻고 후쿠야마 교수가 대답하는형식으로 진행됐다. 후쿠야마 교수는 세계경제연구원(이사장 사공 일ㆍ司空壹) 초청으로 방한 중이다.≫
정몽준 의원=‘역사의 종언’에서 “이념 진화의 종말”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그 종착점이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고 언급했는데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후쿠야마 교수=‘역사의 종언’은 내 독창적인 이론이 아니라 헤겔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각종 형태를 거치면서 사회가 진보하고 결국 공산주의유토피아가 실현되면 역사가 끝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만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역사가 진보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 끝은 공산주의가 아니라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것이 나의 견해입니다.
정=나는 ‘기업경영이념’이란 저서에서 지성인이 시장경제를 경계하는 이유로 시장경제체제는 시장을 선호하고 도덕ㆍ지적 가치를 외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사회주의가 붕괴할 때 제3의 길을 모색한 것이죠.
당신은 저서에서 이념진화의 종말을 고하면서 “대안이 없다. 현실을 직시하라”고 설득했는데, 설득에 성공했습니까.
후쿠야마=지금까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비난은 많았어도 체계적인 대안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세계 도처에서 반세계화시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세계화의 대안은 아직 없습니다.
정=지난해 9ㆍ11테러와 관련, 당신은 현대 과학기술로 정치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통합이 진행될 것이며 그 마지막 단계는 문화적 통합이지만이는 종교나 신념 및 관습의
차이로 인해 매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른바 문명의 충돌이 문화통합을 위
한 마지막 장애물이라는 생각인지요.
후쿠야마= 문화는 결코 완전하게 통합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문화적 정체성을 중요시하며, 모두가 같은 문화로 동화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현대 사회에서는 문화적 차이의 범위가 점차 축소될 것입니다.
서구의 전통적인 기독교문화에서도 한때 세속주의(secularismㆍ정교분리론)가 만연,지금의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이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일방적으로 강요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와 정치의 통합이 너무 위험했기 때문에 결국 문화전쟁에 정치적으로 개입하지 않기로 했고 이는 곧 문화와 정치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문화가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하나로 유지되면서 정치와 따로 떨어져 나갑니다. 이런 점에서 이슬람은 예외라 할 수 있는데, 이슬람 문화는 그러한 신정(神政)분리를 용납하지 않는 유일한 문화입니다.
정=흔히 이슬람 원리주의 혹은 극단주의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 즉 세속화가 부패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후쿠야마=기독교나 이슬람 등 일신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가 정치와 종교를 하나로 생
각 했기 때문에 정교분리를 반대해왔습니다. 그러나시간이 흐르면서 유대교와 기독교는 세속주의를 수용했고, 종교와 정치를 결합하는데 따르는 정치적 위험성을 인정, 정치를 세속화 하기로 결정한 것이죠.
출발은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같지만, 현재의 이슬람은 4~5세기 전 기독교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이슬람이 아닌 것은 모두 부패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정=서구 기독교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정교분리, 즉 세속화라는 처방을 내렸는데 이슬람은 왜 뒤쳐진 채 이제 와서 ‘순수 이슬람의 생존’을 주장합니까.
후쿠야마=어려운 질문입니다. 이슬람 현대사에서 사우디 아라비아가 맡은 역할을 보면 부분적이나마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사우디에는 메카등 성지가 집중돼 있고 부유해 이슬람권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데도 과거 타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20세기에 와서순수 이슬람의 부흥을 지향하면서 타 종교를 용인하지 않게 됐습니다. 사실 미국 조차 사우디를 우방으로서 관용으로 대해왔습니다. 그러나 사우디는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심지어 미국 등에 거금을 투자, 학교, 사원 등을 세우면서 이슬람의 확장을 주도했습니다.
정=이슬람극단주의자들이 미국을 악의 상징이자 부패의 온상으로 여기는 상황에서 과연 세계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인지요.
후쿠야마=솔직히 이슬람권과 비 이슬람권 사이에 대화의 여지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슬람권 내부의 자체대화입니다. 이슬람권은 자신들이 현대 세계에 편입되기를 원하는지를 스스로에게 자문해야 합니다.
만약 현대 세계의 일부가 되고자 한다면 진보를 막는 극단적인 시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슬람권 스스로 이런 결론을 내기 전까지는 비 이슬람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듯 합니다.
정=테러의 원인과 미래 전망이라는 측면에서 ‘문명의 충돌’을 쓴 새뮤얼 헌팅턴 교수와 당신의 견해를 비교해 주십시오.
후쿠야마=헌팅턴교수는 하버드 대학 시절 나의 은사였고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헌팅턴 교수는 국제 정치의 주된 갈등 요인을 문화로 보는 반면 나는 그 요인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현대화 과정에서 찾습니다.
나는 체제가 문화적 차이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다고 생각하며 현대과학 및 경제발전으로 인해 문화적 차이의 범위가 축소될 것으로 전망하지만 헌팅턴 교수는 문화적 차이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정=화제를 잠시 돌려 2002년 월드컵과 한일관계에 대해 묻겠습니다. 일본은 한국의 '가깝고도 먼 나라’입니다.
역사교과서 문제만 보더라도 한국정부는 일본 역사 교과서 중 36개 항목의 수정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이를 내정간섭이라고 치부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월드컵 공동개최의 의미와한일관계에 대한 견해는 어떠신지요.
후쿠야마=일본은2차대전과 당시 저지른 만행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갖고 있습니다. 일본은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하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총리가 성명을 발표한다고 사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독일의 경우 나치의 만행에 대해 전후 진심으로 사죄를 했습니다. 덕분에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들의 신뢰를 확보, 해외 파병까지 떳떳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일본은 진심으로 사죄를 해야 하며 이런 상황에서 정기적인 한일 교류나 월드컵 공동 개최는 양국관계 발전을 위한좋은 시발점이자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정=끝으로 화제를 아프가니스탄으로 돌려서, 아프가니스탄도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이란 사실을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알파벳순서상 첫번째 이기도 합니다.
축구계는 아프간의 전쟁 종식을 환영하며 다음FIFA총회에는 꼭 참석해주기를 기대합니다.
■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
50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랜드연구소 연구원
조지 메이슨대 석좌교수
현재 존스 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교수
저서 ‘역사의 종언’ (1992) 등 다수
■ 정몽준 의원
51세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존스 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 국제정치학 박사
국회의원(울산 동구ㆍ4선)
대한축구협회 회장 겸 2002년 한국 월드컵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홍윤오기자
yo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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