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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용화 주장은 망상 강대국 대한 패배주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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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용화 주장은 망상 강대국 대한 패배주의일 뿐"

입력
200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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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연구원 계간지 통해 대대적 반격소설가이자 경제평론가인 복거일씨가 1998년 저서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통해 본격 공론화한 ‘영어 공용어화(公用語化)’ 논쟁이 5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이번에는 한국의 어문정책을 총괄하는 국립국어연구원(원장 남기심)이 먼저 공격의 칼을 뽑았다.

연구원이 발행하는 계간지 ‘새국어생활’겨울호(제11권 제4호)는 최근 특집 ‘영어 공용어화’를 통해 공용어화론과 공용론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번 기회에 영어 공용어화 논쟁을 마무리짓기나 하려는 듯 비판의 강도는 가히 치명적이다.

박병수 경희대 영어학부 교수는 ‘언어학에서 본 영어 공용어화-언어 생태학적 시각’이라는 기고문에서 일단 “영어 공용화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변질시킬 위험요소가 있으며, 그것은 실현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성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영어 공용어화는 언어 생태계의 파괴를 가속화하고 영어 제국주의를 부추겨 결국 민족어의 생존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며 “진정 우리가 할일은 우리말을 더 잘 가꾸고 그 힘을 키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대현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는 ‘영어 공용론자의 언어관과 문화’를 주제로 한 글에서 “복거일씨는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을 ‘언어는 가볍고 쉽게 버리거나 채택할 수 있다’는 전제에 의존하고 있다”며 “그는 언어에 도구적 기능 이외의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한국어는 한국인 모두가 공유하는 해석의 틀이고 한국인의 삶의 모든 요소를 하나의 총체로 어우르는구조”라며 “언어가 도구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공용론자의 자세를 더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일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문화적 관점에서 본 영어 공용어화’에서 “초강대국 미국 중심의 세계화를 언어 사용에서까지 받아들이라는 압력이 거세게 밀어닥쳐 민족문화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 이 사태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위해 필요한 ‘교통어’인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해야 할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은 강대국에 대한 패배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으므로 그 근저를 파헤쳐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영어 공용어론의 정치적 의미’라는 글을 쓴 김영명 한림대 정치학과 교수는 “영어는 영국과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한국의 지배층이 그 지배를 더 공고히 하기 위한 도구”라며 “영어 공용론자들은 안에서는 패권주의자이고 밖에서는 사대주의자들”이라고 비난했다.

김세중 국립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은 “지금의 공용어론은 공용어의 개념에 대한 충분한 논의나 검토 없이 막연하게 제기돼 왔다”며 “한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것의 의미와 그 실현가능성을 생각해 볼 때 공용어론은 우리 사회에서 영어를 좀더 많이 사용하자는 정도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그는 “사회 정치 경제 등 어떠한 측면에서도 영어 공용어화는 우리 민족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어 공용론자들이 앞으로 어떤 반론을 제기할 지 주목된다.

■영어 공용어화 논재 전개과정

영어 공용어화 논쟁은 1998년 6월 소설가 복거일씨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지성사발행)라는 책을 내면서 불붙었다.

그는 장차 ‘지구 제국’에서 중심부로 진출하려면 영어를 모국어로 삼아야 하며, 그 전단계로 영어를 한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쓰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찬성이나 공감을 표하는 글과 함께 영어 공용어화가 문화 사대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민족주의적 관점의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2차 논쟁은 99년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자유기업센터가 한국소설가협회와 공동으로 주최한 영어 공용어화 문제 토론회가 계기가 됐다.

이어 2000년 1월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의 개인 자문기구인 ‘21세기 일본의구상’이 제출한 보고서에 영어를 일본의 제2 공용어로 하자는 제안을 담은 사실이 보도되면서 3차 논쟁이 일어났다. 작년 5월에는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들려는 정부ㆍ여당의 움직임과 관련해 다시 논쟁이 불붙었다.

지금까지 이와 관련해 나온 책은 10여 종. ‘감염된 언어’(고종석지음, 99년 개마고원 발행)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김경일, 2001년 바다출판사)‘나는 왜 영어 공용어론을 주장하는가’(후나바시 요이치, 2001년 중앙M&B) 등이 공용어론을 주창하거나 찬성했고, ‘나는 고발한다’(김영명,2000년 한겨레신문사) ‘영어 공용화, 과연 가능한가’(한학성, 2000년 책세상)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민족문화가 경쟁력이다’(조동일,2001년 나남출판) 등이 반대하는 책이다.

■한국인 국어사용 능력 급락

한국인의 한국어 사용 능력이 크게 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또 한국인들은 영어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영어의 세계 지배적인 영향력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관광부는 지난해 국어사용 지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실시한 국어사용능력 등에 관한 예비조사 결과를 15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중ㆍ고ㆍ대학생 및 성인 869명을 대상으로 ‘어문 규범 능력검사’를 한 결과 피검사자들의 평균점수(만점 100점)는 29~34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6년 전(1995년)비슷한 문제로 측정했을 때의 평균 50~55점보다 40% 이상(20점 정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특히 점수가 낮은 분야는 맞춤법으로 ‘연도’와‘년도’, ‘맞추다’와 ‘맞히다’, ‘가르치다’와‘가리키다’를 혼동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중ㆍ고ㆍ대학생 및 성인 799명을 대상으로 한 ‘모국어선호도 조사’에서는 ‘국어가 어렵다’(37%)고 응답한 사람이 ‘쉽다’(33%)고 한 사람보다 더 많았다.

‘국어를 좋아한다’는응답자는 67%로 비교적 높았으나, ‘싫어한다’는 사람도 5.7%나 됐다. 이 같은 현상은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력 저하와 젊은이들의 국어 경시 풍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편 국제적인 의사소통에 필수적인 언어를 묻는 질문에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프랑스어 순으로 응답해 영어를 첫번째로 꼽았다.

그러나 영어가 갖는 세계적인 영향력에 대해서는 70%가 ‘좋지 않지만 별 대안이 없다’, 15%가 ‘싫기 때문에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응답했다. ‘좋다’고 응답한 사람은 14%였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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