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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李陸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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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李陸史

입력
200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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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월16일 시인 이육사가 중국 베이징(北京) 감옥에서 옥사했다.향년 40세. 육사의 본디 이름은 원록(源祿) 또는 활(活)이다. 경북 안동에서 퇴계 이황의14대 손으로 태어났다.

봉건적 기준으로 보아 대단한 명문가 출신인 것이다. 육사는 길지 않은 삶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 곧 고귀한 신분에는 거기 상응하는 의무가 따른다는 서양 격언을 고스란히 실천했다.

그가 단 한 편의 시를 남기지 않았더라도, 민족사는 그의 이름을 굵은 글씨로 기록했을 것이다.

육사는 21세때인1925년 의열단에 가입한 이래 죽을 때까지 민족해방운동에서 발을 빼지 않았고, 23세에 첫 감옥살이를 한 이래 조선과 중국의 감옥을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그의 호 ‘육사’도 1927년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돼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르던 시절의 수인번호 64를 딴 것이라 전한다.

어려서는 한학을 배우고 자라서는 군사학교에서 자신을 단련한 육사에게는 투박한 남성적 이미지가 짙다. 예컨대 개벽에서 미래까지를 다섯 행에 담은 ‘광야’ 같은 시에서 그런 이미지가 또렷하다.

그러나 육사는 다감한 마음의 서정시인이기도 했다. 예컨대 그의 시 ‘청포도’를 꼭 정치적ㆍ역사적 상상력으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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