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살람 알라이쿰!” 우리 말 “안녕하세요”처럼 아랍인들이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주고받는 인사말은“당신에게 신의 평화(살람)가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난 한 택시 운전사는 이 말의 뜻을 알려주며 “이슬람은 ‘살람’을가르치는 종교다. 우리 무슬림은 ‘살람’을 사랑한다”고 말했다.하루에도 수 십번씩 평화를 되뇌며 사는 무슬림들, 그들 사이에서 종교를 앞세운 폭력으로 세계 평화를위협하는 극단주의가 싹 트고 확산돼온 까닭은 무엇일까.
‘이슬람 원리주의’(Fundamentalism)로 통칭되는 이슬람 급진 세력은 이집트가 영국 지배하에 있던 1928년 독립투쟁 단체로 출범한 ‘무슬림 형제단’(Muslim Brotherhood)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반 서구화, 순수 이슬람공동체 건설’로 요약되는 이들의 활동은 아랍 전역으로 급속히 번져나갔고 이후 중동전쟁에서의 잇따른 패배, 이란의 이슬람 혁명, 걸프전 등 주요사건을 거치며 극단적 폭력을 앞세운 과격단체에 이념적 토대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집트 외무부 장관의 고문을 지낸 살라흐 바시우니 변호사는 “다양한 분파가 존재하는 이슬람 급진 세력들을한데 뭉뚱그려 원리주의 혹은 테러단체로 규정하는데 반대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원리주의의 시조로 꼽히는 ‘무슬림 형제단’은 선거를 통한 정권 쟁취로 노선을 바꾼 지 오래다. 그러나 문제는 극소수 과격 테러 단체들이 확산시켜온 극단적 반미, 반서구 이념이 평범한 무슬림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9ㆍ11 테러 여파로 관광객이 격감, 일자리를 잃고 생계를 위협 받고 있는 이집트 민초들의 원망의화살은 의외로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이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에 나선 미국을 향해 있다.
지난해 9월 이후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카이로의 택시 운전사 모하마드(46)씨는 “무슬림을 괴롭히는 미국과 맞서 싸우는 빈 라덴은 훌륭한 사람이다. 그가 잡히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룩소르의기념품 가게 점원 아흐메드(26)씨도 “부(富)를 버리고 무슬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빈 라덴을 존경한다”고 했다.
이집트의 최대 신문 알 아흐람의 정치전략연구소의 압델 모넴 사이트 알리 소장은 이런 여론에 대해 “팔레스타인 문제로 인한 뿌리깊은 반미 감정이 발현된 것일 뿐”이라면서 “실제로빈 라덴과 같은 극단주의자들에 동조하는 무슬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빈 라덴이 택한 테러라는 수단이 아니라 ‘무슬림을 핍박하는’미국에 저항한다는 점에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모든 것을 팔레스타인 문제와 미국 탓으로 돌리는 도식화한 주장만으로 무슬림들이 느끼는좌절감과 분노,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동조 여론을 설명할 수 있을까.
정부 관계자나 보수 지식인들은 애써 부인했지만, 일부 젊은 층은 서구 언론의 지적처럼 종교에 대한과도한 집착이 비민주적 정치 상황,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불만의 표출일 수 있다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미국을 적대시하는데는 팔레스타인 문제뿐 아니라 미국이 ‘자유와 민주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뒤로는 자국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아랍의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위선적정책에 대한 반감도 녹아 있다.
실제로 알 카에다의 핵심 조직원들과 9ㆍ11 납치범들 대부분이 중동의 대표적 친미 국가인 이집트와 사우디 아라비아출신이라는 사실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집트는 현재 20년째 비상계엄 상태다. 거리마다 검은 제복에 소총으로 무장한 치안 경찰들이 깔려있다. 야당은 있지만 의석 수는 3% 남짓이고 무슬림 형제단을 비롯한 재야 세력들의 선거 참여는 봉쇄돼있다.
이집트인들 대부분은 정치 문제를 아예입에 담는 것조차 극도로 꺼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30대는 “60여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희생된 1997년 룩소르 테러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는 지지기반을 급속히 잃었는데 정부가 지나친 탄압 정책을 쓰면서 오히려 그들에 대한 동정론이 다시 일고 있다”면서 “무슬림들이 종교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것도 정치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인 마진 샤르카위(27)씨는 “무슬림 민심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나 같은 중산층이나 일하지 않고도잘 사는 2,3%의 특권층 말고 80%에 달하는 빈곤층의 목소리를 들어보라”고 충고했다.
왜곡된 경제 구조로 인해 대물림 되는 빈곤 문제에서도 극단주의가 뿌리 뽑히지 않는 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아스완의 나일강 유람선 보안요원으로 일하다 9ㆍ11 테러 직후 실직한 자카리아스케베키(45)씨는 “빈 라덴도 싫고, 미국도 싫다”면서 “생계 걱정 없이 편안히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카이로ㆍ룩소르=이희정 기자
jaylee@hk.co.kr
■이집트 국민들 고통의 단면
이집트에서 30대 초ㆍ중반의 미혼 남자는 노총각 축에 끼지 못한다. 마흔을 넘기고도 장가 못 든 남자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이다.
아랍의 결혼 풍습상 남자가 집과 살림살이 일체를 장만하는 것은 물론, 신부측에 거액의 ‘마흐르’(지참금)를 줘야 한다.
이혼이나 남편이 사망하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났다는 마흐르는 통상 양가 부친이 흥정을 해 결정하는데 물가 상승에다 경쟁 심리까지 작용, 액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웬만한 회사원의 월급이 100달러 안팎, 많아야 200달러 정도 여서제 힘으로 벌어 장가 들기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에이민(35)씨는 꽤 벌이가 좋다는 관광 가이드로 6년 넘게 일했지만 아직 미혼이다. 그는 “부모님과 동생들까지 돌봐야 하는 처지인데 무슨 수로그 많은 결혼 자금을 모으겠느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스완에서 식당 웨이터로 일하는 세이 카심(47)씨는 “짬짬이 부업도 하지만 고작 월 수입 300 이집트 파운드(80만원)로 혼자 먹고 살기에도 빠듯해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한다”며“결혼한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한탄했다.
이들에 비하면 지난해 8월 결혼한 에즈 엘 딘 하산(35)씨는 행운아다. 대학 교수로, 돈에 관심 없는 장인이 지참금을 마다했고 일하는 아내가 집까지 장만해왔다. 그의 표현처럼‘운 좋게’ 처가 덕을 보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이 역시 중산층 이상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최근 들어 이집트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결혼난도 갈수록 악화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가 집계한 실업률은 10% 안팎이지만 실제로는 20%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되며, 매년 대졸자의 30% 이상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나마 정부가 주식인 ‘에이쉬’(빵) 값을 통제,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최대 4명까지 아내를 둘 수 있도록 한 ‘일부다처제’ 풍습도 대다수 서민들에게는먼 나라의 얘기로만 들릴 뿐이다.
/룩소르ㆍ아스완=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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