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들어가면 주먹을 휘드르는 지인(知人)이 있습니다.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술자리를 시작하지만 술을 몇잔 마시면 눈빛이 확 달라지면서 괜한 일에 시비를 걸고 폭력을 행사하지요.
이 지인은 술이 깨고 나면 으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하고 실제로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 ‘현장 목격자’ 를 오히려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이 지인의 술자리 폭력을 겪고 나면 다음에 반드시 문제를 지적해야겠다고 하면서도 늘 그냥 지나가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의 정리가 되기 마련이어서, 다음에 만나면 “그날 집에 잘 들어갔느냐”며 인사를 나누는 식이지요.
우리 사회가 술자리 문화에 관대하다보니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이런 남자의 술자리 악순환은 다시 이어집니다.
이런 남성은 은연중에 술자리 폭력을 남성다움의 표시로 내비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음날 출근해 술 냄새를 가득풍기면서 어젯밤 폭탄주를 몇잔 마셨다거나 택시 기사와 시비가 붙었다는 사실을 무용담처럼 자랑하지요.
유독 술자리 폭력만 빼고 나머지 일을 상세히기억하는 것을 보면 기억 구조가 편리하게 돼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술자리 폭력 남성은 성희롱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술이 들어가면 동료애를 가장해 여성 참석자의 얼굴을 부비려 하거나 심하면 화장실에서 기다리다가 용무를 마치고 나오는 여성을 혼비백산하게 만듭니다.
여성지나 사보 등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남성꼴불견 유형을 보면 이런 남자가 1순위에 오르고 있지요.
술자리 폭력이 잦고 평소 남성다움을 과시하는 남자의 진실을 말해볼까요. 이런 남자는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남자답지’ 못합니다.
오히려 평소에 어디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던 남자들이 극적인 상황에서 놀랍게 변신해 위기를 돌파합니다.
또 술자리 폭력 남성은 자신의 취중 폭력을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는 기쁨 정신과의원의 김현수 원장은 “취중 폭력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테이프’가 끊겨 기억하지 못하기보다는 실제로는 기억이 나면서도 잊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새해에는 누구나 이런 저런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 결심에 술은 기분좋게 마시고 기분좋게 헤어진다는 계획이 포함됐으면 합니다.
아울러 혹시 동료들이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는 나의 나쁜 습관이 있지 않은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이민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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