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 일상의 속성을 갖고있다면 열정은 그 반대편에 놓여 있다.연습하고 노력한다고 열정을 얻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소설가 전경린(40)씨는 신작 장편소설의 제목을 ‘열정의 습관’(이룸 발행)이라고 붙였다.
‘의’라는 조사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명사 간에 견고한 소속감을 준다.
이 작품은 지난해 문화일보에 ‘나르시스 느와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것을 보완해 양을 늘렸다. 연재 당시 첫 회부터 대범한 성적 묘사를 감행해 논란이 됐었다.
“그가 청바지의 벨트를 풀고 지퍼를 내린 뒤 미홍의 왼손을 끌고 갔다. 그것은 팬티의 허리선까지 올라와 있었다.”
소설은 미홍이 처음으로 남자의 성기를 손 안에 넣었을 때의 감각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작가는 에둘러 가거나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친다. ‘통속적’이라고 치부될까 주춤거릴 법도 한데 전씨는 확실하게 치고 나간다.
소설은 잡지사의 자유기고가로 일하는 서른일곱 살 미홍과 그의 친구 인교, 가현의 이야기다.
비정상적인 섹스와 가학행위를 일삼은 남자를 첫 경험으로 맞았던 인교는 왜곡된 성의식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다.
결혼 12년째인 가현은 남편의 성기를 본 적도 없을 만큼 성에 ‘닫혀졌다’.
반면 여러 남자를 거치면서 성의 이상형을 만들어가던 미홍은 마침내 이상적인 남자 진성을 만나게 된다.
작가는 “한국여성은 아마 미홍과 가현의 중간쯤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접촉하면서 커진다. 만지면서 자라난다. 사랑의 유일한 도구는 육체가 된다.
이런 믿음을 갖고 전씨는 몸이 경험하는 사랑 이야기를 썼다.
그래서 소설은 세 여성의 적나라한 성 경험이 주로 전개되고, 이들이 만나서 나누는 대화가 잠깐씩 삽입되는 게 전부다.
‘얼굴을 붉히는 당신은 육체의 교감을 통해 사랑을 확인하는 기쁨을 아느냐’고 물으면서.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전씨는 만나는 사람마다 성에 대해 물었다.
“열심히 대답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고 한다. 은밀한 얘기를 듣고 소설을 쓰면서 작가는 “육체의 소곤거림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고 고백한다.
“섹스라는 말만 들어도 지겹다는 냉소적인 태도를 떨치고, 소설을 쓰면서 나 자신 하나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소설가 은희경씨는 전씨를 “자타가 공인하는 도발적 매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평한다.
‘도발적인’ 성적 묘사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듯한 이 작품에 대해 전씨는 이렇게 해명한다.
“감춰지고 은폐됐던 것을 벗겨내면 사람들은 도발적이라고 한다. 나는 숨기지 않고 맞선다. 아마 도발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렇고 그런 대중소설로 몰리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마음 쓰지 않는다”고 답한다.
“자신이 쓰는 소설에 확신이 없다면 이런저런 뒷얘기에 온 신경을 기울이겠지…. 나는 내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잘 알고 있다.”
작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거침없는 묘사는 여전히 당혹스럽다.
그러나 전씨는 “그저 흐물흐물하게 섹스를 묘사한것이 아니라 성 행위를 통한 관계의 힘과 긴장을 표출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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