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피임을 주제로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이 달라진거 라는 생각이 드네요”“남자들이 언제나 쾌락만을 위해 피임에 게으른 것은 아니란 점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우리나라에서 ‘피임’은 여전히 여자의 몫이다. 그것은 기혼, 미혼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이다.
왜 그럴까, 그 부작용은 무엇일까. 올바른 피임의 준비자세는?
결혼 14개월을 맞은 신혼부부와 성 전문가, 피임약 마케팅 담당자가 만나 피임을 두고 ‘수다’ 한판을 벌였다.
-축하해요. 아기를 낳으셨다면서요.
-75일 됐는데 아이 몸무게가 10㎏예요. 낳을 땐 4.4㎏였는데.
-슈퍼 베이비군요. 그런데 2000년 11월 결혼했는데, 아이를 참 빨리 낳으셨네요. 계획된 아이였나요.
-아니요. 자연피임주기법을 썼는데 어느날 어머니께서 “얘너 밥먹는 게 이상하다” 하시더라구요. 생리주기가 약간 불규칙한 편이라 임신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생리시작일부터 15일간은 임신 될 가능성이 없고, 16~20일 사이만 조심하면 된다 하는 식이었죠.
-100% 실패할 수 밖에 없는 피임방법을 쓰셨네요. 어떻게 계산하셨나요? (설명을 들은 후) 그것은 거의 잘못됐는데요. 산부인과에서는 자연주기법은 사실 적극적인 피임에 넣지 않을 정도로 틀리는 경우가 많아요. 남편께선 어떤 피임법을 알고 있었나요.
-자연 주기법과 콘돔법 정도요. 군대에 있을 때는 외출할 때 콘돔을 가져가라고 하는 데 오히려 사회에 나오면 그런 게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성에 대해 터부가 많지 않은 편이라 별 어려움 없이 약국에서 콘돔을 샀어요.
-콘돔을 착용하면 성감이 떨어진다, 정관 수술을 하면 정력이 떨어진다, 뭐 이런 속설을 내세우며 남자들이 피임에 더 게으른 거 아닌가요.
-콘돔을 쓰면 안 쓰는 거 보다야 불편한 거 맞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라텍스 재질도 많이 좋아져 실제 감이 그리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분위기가 더 중요한 거 같아요.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고 있는 데 "야 콘돔써" 이런 식으로 나오면 사실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겠지요.
-상담을 하다 보면 고교생이나 어릴 수록 “콘돔을 쓰는 것은 사랑하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피임은 여성만의 책임 아니라 사랑하는 상대의 건강을 지켜주는 ‘의무’ 사항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미혼 여성들의 경우 피임법을 알고 있다 해도 상대방에게 전혀‘주장’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피임 방법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흔히 말하는 “까졌다” “되바라졌다” 식으로 표현되는 것이죠.
-선생님들은 피임에 실패한 적이 없으신가요.
-남편 역시 의사(정신과)라서 그런지 원치 않는 순간에는 관계를 강요하지 않아요.
-전 사실 낙태를 아주 많이 했습니다. 거의 10차례에 이르니까요. 남편이 당뇨병이 있어, 남편에게 정관수술을 하라는 말을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당뇨병 자체도 스트레스인데, 거기가 또 수술을 하라고 하는 게. 그래서 저도 저쪽 부부가 실패한 자연주기법을 사용하다 실패한 적이 많아요.
-결혼할 때부터 이런 저런 피임법 얘기를 들었지만 중요한 것은 부작용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듣게 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피임을 오래 하다 정작 아이를 원할 때 가질 수 없어 고생하는 이야기 같은 것을 더 많이 들었으니까요.
-글쎄요. 산부인과 의사 입장에서 너무나 자주 듣는 얘기인데요, 피임약 복용의 부작용으로 임신이 안 되는 경우는 없고요, 자궁 내 루프를 착용했을 경우 관리에 좀 신경 써야 하는 데 이를 잘못할 경우 감염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인공임신 중절율이 높다면서요.
-기혼여성의 경우 평균 1.5회입니다. 인공임신중절이 찬반의 문제가 돼야 한다는 것은 우습다고 생각해요. 생명의 소중함을 부정하는 게 아니지만 성인의 운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사실 낙태율을 낮추기 위해 의사 입장에서는 그것의 부작용을 크게 말하는 편이에요. 중절을 자주 하면 이를테면 자궁에 구멍이 자궁천공이 생긴다, 이 경우 불임이 된다 등등. 그러나 실제로 최근의 중절은 부작용이 매우 적습니다. 오히려 중절 사후에 감염이나 출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데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죠. 이런 사실은 이제 여성들도 상당수 알고 있습니다. 이젠 엄포가 통하지 않습니다, 자기 몸 속에 소중한 생명이 들어왔다 사라지는 것, 이게 중절이라는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각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국가에서 정관 수술이나 복강경 수술, 그리고 낙태 수술까지 주도적으로 한 것이 낙태에 대한 죄의식을 갖지 않게 된 요인인 것 같아요.
- 피임은 그 권리 자체가 너무 소중한 것입니다. 경구 피임약이 1960년에 나왔고, 여러가지 방법이 모색된 것도 20년이 안돼요. 여성이 피임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너무 인식이 적은 것 같아요. 실제로 피임기술은 286에서 펜티엄급으로 뛰어 올랐는데, 여성들은 주로 피임에 대한 상식을 어머니나 언니, 친구 등 주위 사람들로부터 얻고 있습니다. 다 지난 상식을. 우리나라는 피임약복용율이 3%인데, 유럽은 30%, 특히 20대에서는 60%입니다. 독신녀 가운데 동거녀가 많아 임신을 선택적으로 하려는 사람이 많죠.
-둘째 계획은 어떻게 세우셨어요?
-아직은 계획이 없구요, 전 제 아이가 몇 명이든 아이 한명은 입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남편은 동의하지 않았다.) 실패한 자연주기법을 또 쓰려고 했는데, 글쎄, 이 자리에 나오고 보니, 약을 먹어볼까? 글쎄요, 문제는 피임을 갖고는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저도 진료시간에는 상세히 상담하기가 어려워요. 피임 문제로만 병원을 찾는 환자는 거의 한명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논의가 진행된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네요.
▲참석자 김상배(31ㆍ파이언소프트과장) 박선도(28ㆍ피아노 학원 경영) 부부, 홍순기 인애산부인과 원장, 고금자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성교육전문강사, 윤희영 한국쉐링 마케팅부 대리(약사)
‘피임’을 두고 11일 밤 9시부터수다 한 판이 벌어졌다. 왼쪽부터 고금자 박선도 김상배 윤희영 홍순기씨.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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