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월 미군에 의해 민간인 121명이 숨진 ‘노근리 사건’은 미군의 명령체계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발포명령을 거부한 미군 병사를 소속부대 중대장이 즉결 처분하려 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이 같은 사실은 당시 노근리 민간인에 대한 발포부대 중 하나였던 미군제1기갑 사단 7기갑연대 2대대 중박격포 중대 소속이었던 조지 얼리(68ㆍ미 오하이오주 톨레도시)씨가 14일 노근리 총상 피해자 서정갑(63ㆍ충북영동군 영동읍)씨에게 보낸 ‘속죄의 편지’에서 드러났다. 노근리 학살 현장에 있었던 미군이 피해자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처음이다.
얼리씨의 편지는 노근리 사건이 미군의 상부 명령에 의해 이뤄졌음을 시사하는것으로 발표명령 하달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한 한미 양국의 공동조사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당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지난 51년 동안 고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당신을 쏜 미군 병사는 중대장의 보디가드인 브루노입니다. 당시 중대장은 어느날 밤 기관총으로 민간인들에게 사격하라는 명령을 거절했다고 나를 총으로 처형하려고 한일도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 일이 너무 빨리 일어나서 내가 멈추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얼리씨의 편지 중)
16세였던 얼리씨는 당시 노근리 쌍굴 부근에서 총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는 서씨의 생명을 구했던 인물. 11세였던 서씨는 가족을 따라 노근리 철로 위를 피란민과 함께 걷던 중 미군기의 공중폭격에 파편을 맞고 발목을 다쳤다.
이 때 가족과 헤어진 뒤 혼자 노근리 쌍굴 뒷산으로 내려오다 미군이 쏜 총에 무릎을 맞은 서씨는 쌍굴 옆 논길로 기어가다 미군이 쏜 총에 다시사타구니 부근을 맞아 의식을 잃었다. 실신한 서씨를 발견한 얼리씨는 위생병에게 넘겨 응급조치를 받게 했다.
얼리씨가 서씨의 생존을 알게 된 것은 영국 BBC방송이 최근 노근리관련 다큐멘터리 제작 중 두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BBC 취재진의 서씨 인터뷰 내용을 들은 얼리씨는 당시 같은 부대원에게 총상을 입었던 소년이 서씨였음을 단번에 알아봤다.
서씨가 숨진 줄 알고 50여년간 악몽에 시달렸던 얼리씨는 14일 BBC를 통해 ‘속죄의 편지’를 서씨에게 전달했다.
최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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