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농촌에서는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대단히 어렵다. 모두 도시로 떠났기 때문이다.노인만이 집을 지키는 젊음의 공백상태에서 농촌의 각급 학교는 문을 닫고 매년 여의도 30배나 되는 농경지가 일손 부족으로 폐경화되고 있다.
여기에 농산물개방까지 겹치면 그렇지 않아도 경쟁력없는 우리농촌, 우리국토의 85%를 차지하는 농촌은 파산을 면할길이 없다.
흔히 수도권에 대비되는 지방도 농촌에 비해 사정이 크게 나은 편이 아니다.
지방의 뜻있는 인재와 자본과 산업은 끊임없이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외환위기 이후보다 심화되고 있다.
수도권은 국토면적의 12%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전국인구의 47%가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권력, 금력 등으로 보면 집중도가 훨씬 극심하다.
예컨대 우리나라 100대 기업체중 95개가 수도권에 있다. 공공기관의 90%, 금융기관 대출의 64%가 수도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미래를 주도할 첨단 벤처기업의 67%, 정보통신산업생산의 90% 이상이 수도권에 있다. 반면에 지방의 공단과 택지는 입주자를 찾지 못해 텅비어 있다.
지방대학은 학생을 모시기도 어렵다. 결국 전국토의 88%나 차지하는 지방은 인재, 자본, 미래산업의 공백상태에서 파산을 앞둔 농촌의 전철을 밟고 있다.
왜 우리의 농촌과 지방은 이 지경까지올 수밖에 없었을까.
첫째, 모든 국민의 삶의 터전인 국토를 이익추구를 기본으로 하는 시장경제에 방치하였기 때문이다. 수도권은 지방에 비해 땅값, 집값의 상승속도가 빠르다. 수도권에는 이른바 명문대학이 집중해 있다.
수도권에는 출세와 취업의 기회가 많다. 수도권에는 의료·문화의 혜택이 월등하다. 그러니 수익과 출세와 편익을 좇는 기업과 인력은 당연히 지방보다는 수도권, 농촌보다는 도시를 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업이나 개인은 그들의 개별적 행위로 인한 부작용에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문에 환경파괴, 지역갈등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이 부분은 정부가 바로잡아야 할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까닭에 더욱 심화하고 있다.
둘째, 부처이기주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농촌·지방의 문제는 결국 정치ㆍ경제ㆍ사회의 다방면에 걸친 복합적 불균형의 소산이다.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은 복합ㆍ체계적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힘없는 건설교통부에 모든 책임을 떠 맡긴 채, 각 부처는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우리정부는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총론에는 찬성하면서도 각론에서는 자기부처의 입장만을 일관되게 고수한다.
청와대에 각 부처의 정책을 조율하는 지역균형발전 기획단이 있지만 역시 각 부처의 이기주의를 타파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수도권 규제완화 등의 정책이 다반사로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일개 기업의 구조조정에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쾌척하면서도, 균형발전을 위한 기금마련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결국, 대통령의 의지부족에 모든 원인이 집결된다.
박정희 대통령시절에는 국토의 불균형 정도가 오늘날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행정수도 건설을 법제화하고 실제로 추진할정도로 의지가 강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대통령들은 구호는 있으나 강한 의지와 실천은 없다. 때문에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정부의 각 부처는 제갈길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처럼 농촌과 지방이 죽어가지않는데도 균형발전 정책을 쓰고 있는 나라가 여럿 있다.
프랑스는 부처간의 정책조율을 위해 총리실에 상설기구를 설치했다. DATAR라고 하는 이부서는 균형발전과 정책조율에 필요한 자금까지 배정받아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균형잡힌 국토를 자랑하고 있으나 역시 균형발전 정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동ㆍ서독이 통일된 후에는 낙후된 동독지역의 발전을 위해 지난 10년간 이미 800조원의 정부재정을 쏟아부었다.
앞으로 30년 후면 동ㆍ서독지역간의 불균형이 시정될 것으로 그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웃 일본도 수도이전 정책을 포함한 각종법령을 제정하여 균형발전을 꾀하고 있다.
결국 농촌·지방살리기는 실천의 문제다.
정부기관의 지방이전 추진, 지방의 고등교육지원, 지방산업의 육성, 중앙권한의 지방이양, 수도권집중억제, 지역균형개발 기금확보, 청와대에 상설전담기구설치 등 지난 수십년간에 걸쳐 동원가능한 수단은 이미 모두 제시됐다.
그리고 이 모든 수단은 부분적으로나마 시행된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구호와 선전의 수준에 그쳤다.
국토의 균형발전, 농촌과 지방 살리기가 가야할 길이라고 하면 정부는 이제라도 분연히 자세를 고쳐잡아야 한다.
새로운 획기적인 수단을 만들기보다는 기존에 제시되고 시행됐던 수단을 철저하게, 체계적으로 그리고 부처간의 벽을 허물고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은 물론 대통령의 의지가 선행되어야 가능하다. 국민이 이러한 의지를 갖춘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가에 농촌과 지방 나아가 우리 국토·국가의 미래가 달려있다.
/최병선 경원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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