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어느 때 보다 성급하게 와서 진행중인 듯 하다.지난 해가 너무 경황없이 갔기 때문인가. 벌써 며칠이야. 이젠 오느니 가느니 할 것도 없이 그냥 머물러 있지, 나는 새 달력을 걸며 중얼거리다가 언젠가 읽었던 세상에서 제일 느린 시계에 관한 글을 떠 올린다.
자세한 것은 잊었는데 그래도 기억에 남아있는 내용은 세상에서 제일 느린 그 시계는 세상에서 제일 빠른 컴퓨터를 만든 사람이 고안해 냈다는 것, 그것을 만든 목적은 현재에 매몰된 사람들에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 등이다.
그 시계는 일년에 한 번인지 똑딱 거리고 천년에 한 번 종을 치면서, 그러니까 지금의 일초가 일년으로 늘어나는 정도로 느리게 간다.
속도에 중독된 우리가 이 시계에 맞춰 살아가는 것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느린 이 시계를 만든 사람의 의도대로 보이지 않는 내일까지 내다볼 수 있게 되면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러면 우리는 먼저 지금의 경직된 시간 분할에서 풀려날 것이다.
한 해를 보내고 맞는 일은 5년에 한번 또는 10년에 한번만 하고 이도 저도 번거로우면 그것마저 하지 않는다.
일년 한달 일주일 하루 단위로 생기는 급박한 마감일이 사라질 것이다.
연말 연구업적 때문에 허둥대다가 손을 놓아버리는 일이 줄어들 것이고 한달짜리 프로젝트 때문에 밤샘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당장의 실적을 내기위해 도외시 되었던, 오래 뜸을 들여야 빛을 발하는 아이디어들이 부활할 것이고 길게 생각해봐 라는 표현이 상용될 것이다.
사람 사는것이 겉으로 드러나듯 단순하지 않으며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구체적인 변화가 또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인스턴트 식품을 먹어대는 습관도 달라질 것이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새우깡 대신 옛날처럼 오징어 한 마리 통째로 구우면서 흐뭇해 할 것이다.
슈퍼에서 사와 5분만에 냄비에 데워먹는 국 대신 종일 고아서 우려낸 사골국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사는 방식이며 먹거리들이 이렇게 제대로 변하게 되면 그동안 소외되었던 자신과 이웃들과도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몇 년간 잊고 살았던, 돌아간 모친의 삶도 되새겨보고 교실에서 빤히 날 쳐다보는 학생들의 앞날에 대해서도 염려할 것이다.
그들이 살아갈 이 땅에 대해서도 염려할 것이다. 시간은 더이상 토막이 아닌 연결되는 흐름으로 경험 될 것이다. 우리는 영원을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것은 계속 이렇게 상상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정도의 변화는 어려운 것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계로도 가능할것 같은 것이다. 조금 더 깊게 멀리 생각 한다면, 진정으로 변화를 원하고 행동하기 시작한다면.
옛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있지 않을 미래를 위해서도 일을 계획하고 착수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후손들이 그 일을 이어받을 것이며 무엇보다 생명이 계속된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의 성전들, 피라미드 들을 보라.
그들에 비하면 제 생명을 연장하고자 노심초사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그가 가진 놀라운 기술에도 불구하고 왜소해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보다 높고 영원한 것에 대한 갈구는 우리 속에도 살아있다. 허공에서 제 혼자 명멸하는 광고판을 보며 막막해지는 것은 근원적인 것을 아직 잊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길고 지속적인 것에 대해 고민하면서 삶의 속도를 여기에 맞추어야 한다. 생명은 온전하고 본질적인 것과 늘 연결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를 만든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느린 시계를 고안해 낸 것은 이러한 통찰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 숙ㆍ이화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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