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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그녀가 여서에 준건 옷이 아니라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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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그녀가 여서에 준건 옷이 아니라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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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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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 / 앙리 지델 지음ㆍ이원희 옮김어린 샤넬은 바느질하는 것이 지독하게 서툴렀다. 손가락이 바늘에 찔리기 일쑤인데다, 툭하면 바늘을 잃어버려 바느질을 하기보다 탁자 밑에서 바늘을 찾는 데 보내는 시간이 더많았다.

현대 여성사를 바꾼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1883~1971)의 어린 시절 모습에서는 ‘싹’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 가지 예감이 있긴 했다. 샤넬은 수도원에서 미사가 열리는 동안 빛깔 없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쳐다보았다.

납빛 창틀이 ‘C’라는 철자 두 개가 교차된 모양을 만들어냈다. 그때 여자애가 보았던 두 개의 C는 오늘날 가장 유명한 로고 중 하나가 되었다.

열 두 살에 어머니를여의고 아버지에게서도 버림받아 수도원에 맡겨진 샤넬은 스스로를 “모든것을 빼앗은 아이”라고 불렀다. 그의 일생은 빼앗긴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한 노력의 여정이었다.

전기 부문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가 앙리 지델은 철저한 조사와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코코 샤넬이라는 인물을 재창조한다.

작가는 20세기 초반 프랑스 사회에 만연한 신분 차별을 노골적으로 질타하고 여성의 허영과 유약함을 비꼬는 한편으로, 샤넬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지델이 아는 샤넬은 자존심을 눌러가면서도시 뮤직홀의 가수로 섰을 만큼 무서운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이때 불렀던 ‘코코리코’와 ‘코코가 트로카데로에서 누구를 만났기에’라는 노래로 그는 ‘코코’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돈을 벌기 위해 나선 양재 보조일이 손에 익기 시작한때도 이즈음이었다.

가수로서의 성공을 꿈꾸면서 대도시로 떠났지만 좌절한 그는 뮤직홀 시절에 알게 된 군인 에티엔 발장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말하자면 정부(情婦)였던 셈이다.

작가는 샤넬의 생활을 지독한 차별사회에서 신분이 낮고 가난한 여자가 생존하는 당연한 방식으로 묘사한다.

발장과 헤어지고 사업가 아서 카펠에게로 옮겨갔지만 달라진것은 없었다.

그때의 남자는 곁에 둔 여자가 인형처럼 예쁘고 말을 잘 들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랬지만, 샤넬은 독립적이었다.

빚지지 않은 삶을 꿈꿨던 그는 파리에 모자 상점을 열어 이름을 알렸으며, 연인과 헤어지고 홀로 섰다.

그가 디자인한 단순하고 개성적인 모자는 성공의 시작이었다. 샤넬은 얇은 재킷과 마직물 스커트, 실크 블라우스를 만들어냈고, 커다란 인기를 모았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남자들을 대신해 일을 해야 했던 여자들은 샤넬의 옷에 열광했다.

샤넬의 디자인은 거추장스럽기만 한 드레스로부터의 해방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여성을 옭아매던 관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샤넬은 여성에게 옷을 준 게 아니라 자유를 준 것이었다.

샤넬이 향수를 내놓은 것은 그가 스트라빈스키, 피카소, 달리 같은 예술가와 교류하던 1920년대였다.

자스민 향료와 휘발성 합성물 알데히드를 섞은 것으로, 그윽한 북극지대의 향기를 연상하게 하는 향수였다.

‘4월의 미소’ ‘봄의 욕망’ 같은 낯간지러운 이름 대신 그는 자신의 성과 향수 견본 번호를 나란히 놓은 이름 ‘샤넬 No.5’를 선택했다.

그는 관습을 부숴뜨리면서 나아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작업장을 닫기로 결정했을 때 그 발걸음은 멈춘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70세의 나이에 화려하게 복귀한다. 샤넬은 발꿈치가 드러나는 샌들과 검정색 드레스를 세계적으로 유행시키면서 놀라운 감각을 과시했다.

의상에 복귀한 지 얼마 안된 1957년 샤넬은 ‘20세기의 가장 실력 있는 패션 디자이너’에게 주는 네이먼 마커스상을받게 됐다.

시상식장에서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거침없이 답했다. “식사는 뭘 드세요?” “아침에는 치자꽃을, 저녁에는 장미꽃을 먹죠.” “연세는어떻게 되십니까?” “백살, 아니 그날에 따라 달라요.” “소매에 달린 그 단추들은 뭡니까?” “아! 이건 오래 전에 스트라빈스키가 준 선물이에요.” “무슨 사연이 있는 건가요?” “그야물론이죠…내 것이니까 당연히! 그런데 무슨 상상을 하는 거죠?”

작가가 전하는 70대의 샤넬은 여전히 명랑하고 재치가 있으며 놀랍도록 매력적이다.

88세의 어느날 파리의 리츠호텔 방에서 샤넬은 유리창 너머에서 앞서 세상을 떠난 시인 장 콕토를본 것 같다고 말했다.

샤넬과 친분을 나눴던 콕토는 이렇게 묘사했다. “매력적이면서 호감을 주고 인간적인가 하면 혐오감을 주기도 하며 때론 너무 지나쳐 보이기도 하는 여성.”

그는 그날 죽었다. 지금부터 31년 전 오늘, 1971년 1월 11일이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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