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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 문고판 르네상스

입력
2002.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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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판을 아십니까.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 독서계에는 문고판 책들이 엄청난 역할을 했습니다.삼중당문고, 을유문고, 삼성문화문고 등 기억도 생생한 문고판 책들.

몇 십 원, 몇 백 원만 주고도 사볼 수 있었던 이 문고판의 목록에는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부터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까지, ‘동인문학상수상작품집’에서부터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까지가 모두 들어 있었습니다.

주머니 가벼운 독자들에게 문고판만큼 반갑고 친근한 친구도 없었지요.

하지만 문고판 책은 한동안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단행본 출판이 활기를 띤 출판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었던 겁니다.

19세기 중반 독일에서 시작된 레클람 문고나 영국의 펭귄북스, 프랑스의 크세주 문고 등이 꾸준히발간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참 커다란 아쉬움이었습니다.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는 2,000종을 넘게 내면서 일본 출판문화의 상징처럼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던 한국 출판계에 다시 문고판의 르네상스가 열리고 있습니다.

‘시공디스커버리 총서’‘창해 ABC북’ 등이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요. 이들이 외국것을 번역했다면, 책세상 출판사 ‘우리 시대’ 시리즈의 성공은 젊은 국내 필자들의 글이라는 점에서 한국출판계의 지각변동이라 할 만한 일입니다.

단행본의 평균 정가가 1만 원을 넘어서면서 상대적으로 값싼 책에 대한 수요가 생긴 것이 그 성공의 필요조건이긴 했지만, 독자의 지적 갈증을 파악하고 그것을 문고판으로 기획해낸 힘이야말로 그 충분조건입니다.

흔한 말이 돼버렸지만 ‘발상의 전환’은 우리 출판계에서도 절실합니다.

독자들 가까이 가져다 놓을 수 있는 기획 말입니다. 한 출판인의 “출판기획자는 책을 통해 세상을 편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하종오기자

joha@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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