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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벌거벗고 말하는데…"

입력
2002.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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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학 산문집 '푸른자전거'시인 이윤학(37)씨는 벌거벗고 세상을 나선다. 한 사람이 그를 때린다. 또 한 사람은 돌을 던진다. 시인의 몸뚱이는 멍들고 상처나고 흙탕물이 튄다. 그래도 얼굴 한번 허물어뜨리지 않는다. 그는 쓸쓸하게 웃으면서 비척비척 걸어간다. 시인은 한없이 피로하다.

이윤학 시인은 두번째 산문집 ‘푸른 자전거’(웅진닷컴 발행, 7,700원)에서 알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글을 쓴다.

인간은 내밀한 자기 얘기를 쓸 때에도 부끄러운 부분에 이르면 무늬를 그리고 싶어진다. 시인은 그러나 벗은 몸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다치게 하는 세상을 순하게 바라본다.

커피를 한번도 마셔보지 않았던 고등학생 이윤학이 하숙집 커피통을 몰래 빼냈다.

눌어붙은 맥스웰 커피통에 끓인 물을 몇 번이나 넣고 백설탕도 세 국자씩 퍼넣는다. 새벽 즈음에 배를 끌어안고 데굴데굴 굴렀다.

“아픔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비켜 갈 길이 없다”는 철없는 고백을 듣고도 무턱대고 웃을 수 없다.

커피 한 사발이 시인의 어린 뱃속에 낸 상처가 아프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인은 몸이 자랐지만 들기름한 컵에도 여전히 상처를 입는다.

소주를 왕창 마신 밤에 갈증 때문에 일어났다.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알고 봤더니 들기름이란다.

밤새도록 토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쓰라린 커피처럼, 메스꺼운 들기름처럼 세상은 시인을 상처낸다. 그래도 “아픔은 빙 둘러갈 길이 없다”며 시인은 앞으로 나아간다.

고3때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다가 “젖소의 엉덩이 살을 조금만 오려먹자”는 얘기가 나왔다.

엉덩이 살을 조금 떼었다고 젖소가 죽기야 하겠냐는 생각이었다. 날뛰는 젖소를 잡고 엉덩이 살을 오려내 구워 먹었다.

엉덩이 살 발린 젖소는 쓰러져서 일주일을 앓다가 죽었다.

“젖소 값을 걷어 물어 주면서, 더럽게 비싼 고기를 먹었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끔찍한 얘기도 천진하게 말하는 시인은 할 말을 잊게 한다.

그의 추억은 걸러내지 않은 마음에서 나온다. 세상 사람들이 입는 ‘제스처와 포즈’라는 옷이 그에게는 도무지 맞지 않는다.

그만큼 눈치껏 사는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는게 버겁다.

“윤핵아, 나 엄마여~ 요즘도 그렇게 술 많이 먹고 다닌다며. 너만 생각하면…난 매일 거미를 잡아먹고 사는 것 같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고향 집 생각이 난다. 어머니가 어린 윤학이에게 얘기했었다.

“사람은 먼저 마음을 곱게 다스려야 한다. 얼굴만 잘생겨서는 못쓴다. 비단보자기에 똥을 한 무더기 싸 들고 다니는 격이지.”

구태의연한 비유일 테지만 시인의 마음은 비단같이 곱다. 그러나 고운 시인은 똥 같은 세상을 걸어가야 한다.

세상이 시인을 아프게 한다. 이윤학 시인은 “나는 상처를 만들어내는 발명가”라고 말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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