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혼란이 빚어졌던 것은 투표용지 때문이었다.10명이 넘는 후보 명단을 한 장에 집어넣기 위해 이름을 좌우로 빽빽이 배열한 투표용지의 디자인이 문제의 불씨였다.
바로 이 나비형 투표용지(Butterfly Ballot)가 유권자의 기표에 혼동을 유발해 나라가 거의 뒤집어질 뻔한 소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행정상의 사소한 부주의가 얼마나 큰 사태로 번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다.
■'나비효과'라는 것이 있다.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한 마리 나비가 날갯짓을 하는것이 태평양 한가운데서 거대한 태풍을 형성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과학 이론이다.
미국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1961년 기상관측을 하다가 깨우친 이 원리는 훗날 카오스 이론으로 발전해 여러 학문 연구에 쓰이고 있다.
주가를 예측하는데도 이 이론이 동원될 정도다.
"하나의 작은 불씨가 온 광야를 불태운다"는 마오쩌둥의 유명한 어록 역시 나비효과 이론과 같은 맥락에 있다.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서 나비효과는 더욱 강한 힘을 갖는다.
디지털과 매스컴 혁명으로 정보흐름이 빛의 속도로 빨라지면서 지구촌 한구석의 미세한 변화가 순식간에 세계의 파노라마로 확산되는 것을 현대인들은 실감하고 있다.
1997년 여름 태국정부가 바트화를 평가절하했을 때, 이것이 삽시간에 아시아-브라질-러시아로 이어지는 국제금융 파동의 도화선이 될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최근 서울 강남 아파트값 폭등도 '나비의 날갯짓' 때문이다.
수능시험 출제 난이도의 조정, 분당 일산의 고교평준화, 연이은 금리인하 등이 결국 강남에서 거센 회오리를 일으켰다.
모두가 정부가 한 날갯짓이다. 아마도 정부는 자신의 날갯짓이 이렇게 빨리 폭발적 반응을 일으킨 데 스스로 놀랐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책 환경의 변화다. 이제 국민들의 정책반응은 과거에 비할 수 없이 빠르고 예민해졌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고차원적 정책이 아니고서는 정부는 항상 국민들에게 끌려가게 되어 있다.
송태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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