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지역 아파트값 급등을 잡기 위한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대책이 세무조사 등 일회성 조치에만 그쳐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전문가들은 특히 정부가 그동안 건설경기 활성화라는 명분아래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대거 해제, 투기 억제 수단이 거의 없는 상태라며 차제에 주택정책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일 건설교통부 등에따르면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 이후 정부가 내놓은 주택경기 활성화 및 시장안정 대책은 모두 22차례.
이를 통해 정부는 70년대 이후유지해왔던 부동산 투기방지 정책의 골간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98년 1월 소형평형 의무비율 폐지, 12월 분양가 자율화 전면시행, 99년 2월분양권 전매 전면 허용 등 굵직굵직한 사안만 56건이나 된다.
담당자들도 정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헷갈린다고 말할 정도다.
주택의 안정적 공급보다는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건설경기부터 살리자는 것이 정부의 의도였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최근 아파트 분양시장을 거대한 투기판으로 변질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서울 1차 동시분양에서는 수 만명의 청약경쟁자들이 몰려 43대 1이 넘는 전대미문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상당수 청약자는 내집 마련이 아니라 당첨만 되면 앉아서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을 받고 되팔 수 있다는 계산을 염두에 둔 가수요 세력이었다.
여기에 정부의 청약제도 변경으로 3월이면 180만명에 이르는 청약통장 1순위자들이 추가로 대거 분양시장에 뛰어들어 혼란을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이번에 강남 재건축아파트가투기대상이 된 것은 분양권 전매의 전면 허용에 ‘원죄’가 있다.
정부는 98년 8월 2회차 중도금만 내면입주권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해 준데 이어 99년 2월부터는 계약금만 내면 분양권을 전매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완전히 허물어버렸다.
분양권 전매허용으로 아파트 분양시장은 투기꾼들의 ‘판’이 돼버렸다.
모델하우스 앞에 장사진을 친 소위 떴다방(이동중개업자)들이 투기바람을 잡고 프리미엄을 조작하면서 애꿎은 실수요자들만 피해를 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또, 계약금도 내기 전에 이루어지는음성매매를 통해 편법과 탈세행위가 판을 치고 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분양권 전매 허용의 순기능은 효력이 다한 반면 역기능이 크게 부각되면서 분양시장의 왜곡현상이 극에 달해 있다”며 “분양권 전매를 허용하되 2회 이상 계약금을 낸 실수요자들에게 제한할 수 있도록 제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집값안정을 위해서는 분양권 전매 조치부터 금지해야 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집값 상승의 압박 요인으로작용하고 있는 중소형 주택의 수급 불균형 문제도 오락가락 정책을 편 건설교통부의 주택공급정책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건설교통부가 98년 1월부터 소형평형 의무비율을 폐지한 이후 주택건설업자들이 마진이 큰 중대형 아파트를 짓기 시작하는 바람에 서민대상의 중소형 아파트는 품귀현상이 빚어졌다.
강남 집값 급등의 주된 원인 중 하나인 재건축 기대심리도 소형아파트 의무비율 폐지의 후유증 중의 하나다.
이와 함께 규제완화 차원에서 이루어진 분양가 자율화 조치는 신규 아파트 분양가는 물론, 기존 아파트까지 덩달아 상승시키는 역기능을 낳았다. 분양가 자율화 조치 이후 97년평당 508만원이던 분양가는 2001년 말에는 829만원으로 63% 이상 급등했다.
이에 대해 건교부는 인위적인규제보다는 시장논리에 맡겨야 할 부분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리 돈을 내고 집을 사는 지금의 선분양 제도가 세계에서도 유례가없는 비시장적인 제도인 상황에서 공공재 성격이 강한 주택을 시장논리만으로 접근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주택시장의 왜곡현상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처방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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