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아파트 값이 새해 벽두부터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경제안정을 위협하고 있다.지난해 말부터 불붙기 시작한 강남의 아파트 값 상승세는 불과 일주일 사이에 몇 천만원씩 폭등할 정도로 과열 양상이다.
과거 부동산 투기의 광풍이 불던 시절에도 볼 수 없었던 급등세다. 정부가 뒤늦게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지만, 그 내용을 볼 때 과연 얼마나 약효가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 이유는 먼저 가격상승을 초래한 강남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정부가 생각하듯 투기를 노린 가수요(假需要)가 아니라 실수요(實需要)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능시험이 어려웠던 것에 자극을 받아 학원이 좋다는 곳을 찾아서, 또는 지역내 명문고가 사라진 일산, 분당에서 더 나은 학군으로 가기 위해서 강남으로 몰려드는 학부모들이 어떻게 투기적 가수요인가.
이들은 도리어 가족이 흩어지고, 남의 집에 사는 한이 있더라도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가야겠다는 확신범들이다.
그러니 교육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우리의 교육열이 갑자기 식어버리는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한 8학군 강남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 이유가 없다.
타 지역 아파트 값은 상대적으로 잠잠한데 유독 강남만 나홀로 급등하는 현상이 바로 실수요에 의한 가격상승이라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또, 과거와 달리 땅값보다는 아파트값이 치솟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투기요인이 전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재건축이나 신규분양에 따른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적 수요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사실 아파트 값만 따진다면 강남은 불패(不敗)의 신화를 갖고 있다.
아파트 값이 오를 때면 강남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고, 값이 내릴 때는 강남이 가장 늦게, 가장 적게 떨어지는 현상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부동산 재테크 차원에서 본다면 강남은 가장 확실한 투자대상인 셈이다.
어느 지역보다 나은 주거환경, 부유층이나 사회지도층이 수두룩한 주민 구성 등 독특한 강남만의 인구사회학적 특성은 마치 우리나라가 OECD(경제개발협력기구)에 가입하면 선진국이 되는 것처럼 인식했듯이, 강남에 사는 것 자체를 사회적 성공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경향까지 낳고 있다.
강남 아파트 값 상승에 이런 다층적 배경이 있는데 몇 명 부동산 투기단속반을 풀고, 세무조사로 겁을 준다고 해서 강남 아파트 수요가 쉽게 꺾일까.
또 수요가 많으면 공급을 늘리는 게 맞지만, 수요는 강남에 있는데 멀리 수도권 그린벨트를 대거 풀어 아파트를 공급하는 게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강남아파트 값 상승세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책도 오늘 내일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차라리 장기적인 계획아래 강남 아파트 가격급등의 뿌리가 되고 있는 교육 문제, 주택수급 불균형 문제, 서울 강남북 불균형 문제 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게 올바른 방법이다.
그리고 강남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가 부동산 시장 전체의 투기불길로 번지는 일만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요즘 부동산시장은 투기라는 병균이 자라기에 최적의 토양이다. 아파트 전매(專賣) 금지처럼 부동산 투기를 막던 안전장치들이 대거 풀려있는데다 정부가 경기부양 차원에서 부동산 경기에 풀무질을 해대고 있고, 저금리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이 대박을 찾아 떠돌고 있다.
정부정책의 책임이 크다. 과거에도 부동산 투기붐은 경기를 띄워야겠다는 정부의 집착이 불씨가 되곤 했다.
외환위기의 수렁을 간신히 빠져 나와 기진맥진해 있는 판에 투기의 광풍이 다시 분다면 우리 경제는 다시 주저앉을 수 밖에 없다.
부동산 투기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다시 열리게 해서는 안된다.
배정근 경제부장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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