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를 비롯한 제작진은 첫 녹화가 진행된 부산 을숙도 촬영장에서도, 1회 분을 본 시사회장에서도 이처럼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고 높은 인기(시청률 30.5%)를 얻을 줄 몰랐다.10일 끝나는 SBS 수목 미니시리즈 ‘피아노’는 조폭이 스크린을 벗어나 안방극장의 소재로 활용되고, 이복 남매의 금지된 사랑을 다룬다는 우려 속에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우려를 말끔히 불식시키고,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성공을 거뒀다.
재민이 놀러 나가서 지금은 아무도 없지만 분명히 사람 사는 흔적이 있는 공간, 그곳에 있는 억관(조재현)의 사진으로 ‘피아노’는 끝난다.
의붓자식을 위한 무조건적인 아버지의 사랑은 깡패인 의붓 아들을 대신해 죽는 것으로 완결되고, 또 하나의 축인 이복남매(김하늘과 고수)의 사랑은 두 사람이 이뤄질 수 없음을 인정한 뒤 가족으로거듭난다.
현실에서는 드문 일이지만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잔잔하면서 감동이 있는 영상으로 풀어낸 것이 ‘피아노’의 가장 큰 성공 원인이다.
명문대를 졸업한 자식 달린 미망인과 삼류깡패의 지순한 만남, 의붓자식에 목숨을 건 아버지의 지독한 사랑, 금지된 이복남매의 애잔한 사랑은 현실에서 거의 보기 힘든 상황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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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규완씨
친자식도 버리고 1회용 인스턴트 사랑이 판치는 요즘 ‘피아노’는 사람들의 가슴 저변에 깔린 정서를 충족시켰다.
마치 영화 ‘철도원’과 ‘러브 레터’의 아사다 지로의 휴머니즘과 사랑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극적 사실성을 부여한 조재현 등 출연진의 뛰어난 연기력도 인기의 한 원인이다.
삼류깡패에서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아버지로 변신하는 억관 역을 조재현은 섬세한 심리, 능수능란한 표정과 대사연기로 드러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깡패 아들 역의 조인성 역시 카리스마를 만들어냈고, 마음 착한 아들 역의 고수도 배다른 누나와의 금지된 사랑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풍부한 감성이 묻어나는 극본을 집필한 김규완씨의 노력과 트렌디 드라마의 영상을 잘 구현하는 오종록PD의 연출도 시청자들이 ‘피아노’를 가슴으로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피아노’는 문제점도 드러냈다. 이혼과 재혼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험한 소재인 ‘이복남매간의 금지된 사랑’을 드라마라는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미화한 측면이 적지 않았고, 폭력성을 완화시켰지만 매회마다 등장하는 폭력과 선정성은 흠으로 남았다.
■작가 김규완씨
1년간 가슴에 안고 살았던 ‘피아노’의 마지막 대본을 떠나 보내던 날(8일), 그녀는 지하철을 탔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 목적지 없이 지하철에 오른 것이다.
“할말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완전히 떠나 보내지 못한 것 같아요…”
지난 두 달간 화제를 일으키며 시청자의 가슴을 아리게 만든 SBS 수목 미니시리즈‘피아노’의 작가 김규완씨(35). SBS 단막극 ‘집에 가는 길’ 등 단막극 세편이 작가 생활의 전부였고 연속극으로서는 ‘피아노’가 처음이었던 그녀는 인생의 아픔과 사랑의 빛깔을 간결하고 단아한 시적인 대사로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 억관역을 맡은 조재현은 “연기를 하면서 대사가 주는 매력에 빠졌다. 미묘한 감정묘사를 매우 정확하게 표현해 작가의 역량에 놀라웠다”고 찬사를 보낸다.
8일 ‘피아노’ 마지막 촬영이 있었던 SBS 일산 스튜디오에선 연기자들이 눈물 바다를 이뤘다. “나두 그렇게 말할라구 했단 말야! 나두 재수 저 자식처럼 아부지라구 부르면서…사랑한다구 말할라구 했단 말야! 당신이 손수건을 흔들었으니, 나는 담요라도 흔들면서 그렇게 말할라구 했어!”
자신을 대신해 조폭 두목에게 총을 맞고 죽은 아버지를 안고 외치는 조인성의 절규가 연기자를 울리고, 스태프들의 가슴을 저리게했던 것이다.
이처럼 김씨의 대사는 시청자보다 먼저 연기자들을 울렸다.
조용하면서 말을 아끼는 김씨는 “시청자의 열띤 반응에 너무 놀랐다. 오종록 PD의 노련한 연출과 조재현씨를 비롯한 연기자들의 열연이 성공 요인”이라고 했다.
그녀는 “조재현씨가 너무 연기를 잘해 내가 저렇게 잘 썼나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며 웃는다.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김씨는 “시청자들에게 맑고 깨끗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당분간 ‘피아노’를 당분간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할 것 같다”는 김규완씨.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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