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1월10일 수필가 전혜린이 자살했다. 31세였다.전혜린이라는 이름은 기자의 바로 앞뒤 세대 사람들에게는 10대에 통과의례로 치러야 할 어떤 열병의 상징과도 같았다.
서구 세계에 대한 부박한 동경, 후진국 시민으로서의 절망과 자학, 삶의 무의미를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자의 도저한 염세주의와 허무주의등 온갖 시큼들큼한 제스처들이 그녀의 글 안에 현란하게 배열된 채 덜 익은 영혼들을 유혹했다.
경기여중고, 서울법대, 뮌헨대라는 호화 찬란한 학벌이 그 얄팍한 감상문들의 ‘깊이’를 보증해주고 있었다.
전혜린에 대한 전형적 이미지를 만든 것은 그녀의 사후에 출간된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6)의 발문일 것이다.
국문학자 이어령의 이름으로 수록된,그 러나 실제로는 뒷날 불문학자가 된 24세의 김화영이 썼다는 이 발문의 한 대목은 이렇다. “어둠이 깔리는 박명(薄明)의 층계 위에서 그 여자는기다리듯이 서 있다.
그에게 다가가는 이는 그 여자가 얼마나 낯선 얼굴 속에서 놀라움의 눈을 뜨는가를 볼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들에게 영원한‘손님’인 것이다.
만나는 자리에서 그는 항시 떠날 준비를 한다.(…) 당신은 이제 알 것이다. 그가 도달한 침묵의 값을.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하지 않았다.”
죽기 이틀 전인1965년 1월8일의 일기에는 유서의 분위기가 감돈다.
“몹시 괴로워지거든 어느 일요일에 죽어버리자. 그 때 당신이 돌아온다 해도 나는 이미 살아있지 않으리라. 당신의 여인이여, 무서워할 것은 없노라. 다시는 당신을 볼 수 없을지라도 나의 혼은 당신과 함께 있노라. 다시 사랑하면서 촛불은 거세게 희망과도 같이 타오르고 있으리라. 당신을 보기 위해 나의 눈은 멍하니 떠 있을지도 모른다.”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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