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은행간 합병 움직임이 새해 들어 급속히 냉각 조짐을 보이고 있다.능동적 합병의 중심 축으로 거론됐던 신한, 하나, 한미 등 우량은행들은 9일일제히 “당국의 채근에 따라 원론적인 검토는 해봤으나 구체적으로 합병을 추진한 적도, 서두를 이유도전혀 없다”고 합병설을 부인했다.
서울, 조흥, 제일 등 공적자금 투입 은행의 매각이나 합병 추진 역시 개각과금융당국의 인사 국면을 맞으면서 일시 표류하는 양상이다. 금융당국자들은 지난 해 말부터 “조만간 국민ㆍ주택을잇는 추가 합병이 가시화할 것”이라며 은행 대형화 드라이브를 걸어왔지만 당분간 ‘공염불’이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량 시중은행들의 태도변화는 무엇보다도 경영 여건의 호전 전망에 따른 것. 신한은행관계자는 “하이닉스 등 대형 부실 채권을 지난 해 말 100% 상각처리했다”며“추가 충당금 부담이 없기 때문에 이자와 카드부문 이익이 지난해 수준만 유지돼도 올 당기순익은 지난 해의 2배 가까운 7,000억원대에 육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인호(李仁鎬) 신한은행장이 최근 합병 추진에 관해 “추후 독자생존이 어렵다고 손을 들고 나오는 은행이 나타날 것”이라며“구체적 합병 추진은 그 때가 적기”라고 밝힌 것도 영업호전에 대한 자신감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 역시 “그동안 설로 나돌았던어떤 은행과도 접촉을 하지 않고 있다”며 “영업 호황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행장과 임원, 수많은 직원들의 고용문제로 이어질 합병을 당장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말했다.
서울은행은 국내 기업컨소시엄 및 해외 매각 방안 등을 담은 경영정상화 방안을지난 해 말 금감위에 제출했으나 당국의 구체적인 입장이 나오지않아 협상 자체가 공전하고 있는 상황. 인수 희망기업 관계자는 “금감위는당초 2월까지 검토 후 처리방안을 통보하겠다고 했지만, 진행 중인 협상을 공전시키면서까지 검토기간을 2개월로 잡는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제일은행은 공적자금 투입은행 처리 방침이 늦어지자 최근 정보통신(IT)투자를 재개, 사실상 합병 대신 중기 독자생존전략으로 돌아서 그간 나돌았던 하나ㆍ제일 합병이 물건너간 것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은행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합병은 엄청난 고통을수반하게 마련”이라며 “정부나 당국이 ‘공염불’보다는 합병이 성사될만한시장 여건을 조성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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