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ㆍ11 테러 이후 중앙아시아의 석유ㆍ가스수송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 관계에 변화의 바람이 가시화하고 있다. 양국이 대(對) 테러 협력 분위기를 이어가면서 중앙아시아의 자원 이권을 둘러싼 과거의 대립 구도가 협력관계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미국과 러시아는 9ㆍ11 테러 전 카스피해 연안의 자원을 운반할 수송로 건설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여왔다. 특히 바쿠(아제르바이잔)-트빌리시(그루지아)-제이한(터키)을 잇는 루트는 양국간 자원 전쟁의 상징이었다. 미국은 러시아를 우회하는 이 건설 계획을 주도, 유럽행 원유의 수송을 통한 이권 획득을 노려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석유 재벌인 루크오일사 회장이 지난 달 24일 바쿠를 방문, 수송로 건설 사업에 대한 출자 의사를 표명하는 등 최근 상호 협력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양국의 협력이 현실화할 경우 BTC 건설의 실현 가능성은 한층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해 11월 27일 카스피해 파이프라인 컨소시엄(CPC)의 수송로 개통식에서도 나타났다. 미국은 쉐브론사가 개발한 카자흐스탄의 텐기스 유전의 원유를 흑해 연안에 운반하기 위해 1990년대 중반부터 이 루트를 개발해 왔으나 러시아 보수파의 강력한 저항으로 개통식을 미뤄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중앙아시아에서 미국과 러시아 및 카자흐스탄 간 협력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라며 개통식에 의미를 부여했다.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면서 아프가니스탄을 관통하는 파이프 라인 구상도 조명을 받고 있다. 미국은 1997년 투르크메니스탄의 천연 가스를 아프간을 통해 파키스탄으로 수송하는 1,470㎞의 가스관 건설을 추진했으나 이듬해 케냐ㆍ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 폭탄테러 사건의 여파로 물거품이 됐었다.
이와 관련, 최근 미국의 아프간 특사로 임명된 잘마이 카릴자드의 행보가 주목된다. 아프간계로서는 미국 정부 최고위직에 오른 그는 이 계획을 추진한 컨소시엄의 최대 지분 참여자(54%)인 유니칼사의 컨설턴트로 일했었다.
석유업계 전문가들은 “카릴자드의 특사 임명은 여러 정치적 복선을 깔고 있다”며 “가스 수송로 건설과 관련한 그의막후 역할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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