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낮 12시께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단지. 단지 안에 위치한 입시관련 학원 앞에는 10여대의 학원 버스가 학생들을 기다리고, 그 앞 뒤로 경기 차번호를 단 고급 승용차 수십대가 긴 줄을 이루고 있다.이들 승용차는 분당 등 신도시지역에서 아이를 ‘학원 등하교’시키기 위해 부모가 몰고 온 차량이라는 학원 관계자의 귀띔에 ‘대치동 열풍’이 실감있게 다가온다.
매일 중2짜리 아들을 분당 집에서 대치동 학원까지 태워다 준다는 정모(41)씨는“학원의 명성 때문에 오게 됐다”며 “분당의 고교가 평준화되면서 다시 강남 8학군으로 오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털어놓았다.
■ 현지 분위기
강남 일대 아파트 폭등세 속에 이날 정부의 투기방지 대책까지 발표됐지만,‘강남 행(行) 열풍’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대치ㆍ도곡동 등의 이름난 학원마다 등록을 못해 대기하는 학생이 수백명에 이르고, 부동산중개업소 등에는 매물이 자취를 감춰 매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회탐구 등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B학원 관계자는 “돈 봉투를 건네면서 자리가 나면 먼저 연락해달라고 주문하는 학부모가 수십명에 이른다”고 귀띔했다.
’대치동 열풍’은 최근 이곳으로 이사 온 김모(43ㆍ여)씨가 대표적인 케이스.
김씨는 지난 5일 중3생 딸을 위해 상계동의 44평형대의 아파트를 2억3,000만원에 팔고 은행 융자등 무리를 하면서 3억7,000만원을 들여 대치동에 31평형 아파트를 구입했다.
김씨는 “빨리 집을 구하느라 부동산 중개업소에 웃돈까지 줬다”며 “아이가 경쟁적이고 좋은 환경에 공부할 수 있게 돼 천만 다행”이라고 말했다.
대치동 붐타운 공인중개의 황대선(黃大善ㆍ38)사장은 “작년 대입 수학능력시험이 어렵게 출제되고 학교간 등급제가 명문대에서 채택되는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유명학원이 밀집된 대치ㆍ도곡동으로 이사오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같다”고 전했다.
■ 거품 논란
강남 열풍은 아직 뜨겁지만, ‘교육프리미엄’이 가져온 아파트 값 폭등에는 거품이 적지 않게 배어있다는지적도 만만치 않다.
현지 부동산중개업자들도 폭넓은 매수세가 뒷받침 되지않은 상황에서 호가 위주로 가격이 올라 적정가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대치동의 B중개업소 관계자는 집 주인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거나 집을 내놓지 않아 1주일에 1건 거래를 성사시키기도 어렵다”며 “이런 분위기는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원열풍의 한계를 꼬집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교육개발원 유현숙(劉賢淑) 인적자원 연구실장은 “많은 연구에서 아무리 좋은 학원에 다니더라도 학업성적은 잠시 반짝 올라갈 뿐, 자기 주도적인 학습능력이 현저히 ‘퇴화’하고 창의력도 급격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학원이 집값을 부추기는 것은 기현상 임에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과외가 성적향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0.3%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던 단국대 교육대학원장 이해명(李海明) 교수는 “유명 학원 과외가 성적 향상에 전혀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과외의 효과는 지능과 노력에 비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라며“학생이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사교육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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