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자빠졌습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입니다. 빙판길이어서 발목과 허리에 힘을 주고 살금살금 걸었습니다.약속장소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누군가가 뒤에서 불렀습니다. 돌아보는 순간 중심이 흐트러졌고 벌러덩 넘어졌습니다.
뒤에서 부른 이는 만나기로 했던 사람. 미안한지 다가와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의 손을 잡고 거의 일어나려는 찰라, 이번에는 그쪽이 앞으로 미끄러지며 몸을 덮쳤습니다.
두번째 벌러덩. 몸이 크게 상하지는 않았지만 옷은 완전히 엉망이 됐습니다.
넘어져 부끄럽다는 생각보다는 화가 났습니다. 넘어진 곳이 예사롭지 않은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초 서울 인사동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제야에 서울에는 눈이 흩뿌렸습니다. 부지런히 제설작업을 한 결과 간선도로는 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이면도로는 사정이 조금 다르죠. 눈이 온 지 열흘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자동차가 오르지 못하는 곳이 많고 아이들이 놀기에도 불편합니다.
하긴 동네 언덕길이 미끄러운 것이야 스스로의 게으름을 탓하며 그 주민이 고통을 받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인사동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사동은 이제 한국 관광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한국 관광을 알리는 모든 홍보책자의 첫머리를 장식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공적으로 기울이는 관심도 많습니다. 긴 기간 공사를 벌여 바닥을 벽돌로 깔았고, 일요일과 휴일이면 자동차의 통행까지 막고 사람을 불러모읍니다.
그런 인사동이 한동안 빙판길이었습니다. 자동차가 다니는 가운뎃 길은 염화칼슘을 뿌렸는지 일찍 벽돌바닥을 드러냈지만 양 쪽의 인도는 반질반질 했습니다.
지금은 겨우 딛고 다닐 정도인데 그것도 온전히 지나는 사람들의 발기운에 의한 것입니다.
제 가게 앞의 눈도 치우지 않는 상인. 인사동에 문을 열고 장사를 할 자격이 있는지. 관련 관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방문의 해를 1년연장하고, 월드컵을 이 땅에서 열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연말연시를 맞아 인사동에는 외국 여행객이 많았습니다. 낯선 곳에 들어선 이방인들은 엉금엉금 기었습니다.
설국의 모습에 신기해하는 표정이 아닙니다. 조심하느라 짜증나고 고통스러운 얼굴입니다.
특히 눈이 없는 남국에서 온 듯한 외국인들은 거의 울상이었습니다. 보는 사람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눈 앞에서 벽안의 숙녀가 큰 비명을 지르며 미끄러졌습니다. 관광 한국의 위신이 미끄러지는 것 같았습니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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