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이내에 10잔의 와인을 맛보고 포도 품종, 와인명, 빈티지(vintageㆍ제조연도)를 맞힌다.지난 한 해 몰아친 와인 열풍속에서 또 하나의 직업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바로 소믈리에다.
소믈리에(Sommelier)는 원래 프랑스어로 ‘맛을 보는 사람’이라는 뜻. 이제는 호텔이나 와인 바 등에서 와인 구매, 감별부터 서빙까지 와인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와인전문가를 일컫는 말이 됐다.
최근의 와인 열풍과 더불어 국내에서도 소믈리에가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일천한 와인 역사 때문인지 진정한 소믈리에로 인정받은 사람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잠실 롯데호텔 이탈리아 식당 베네치아 공승식(39)씨는 특별하다.
그는 최근 국내에서 열린 프랑스 농식품 진흥부(SOPEXA) 주최 우수 소믈리에 선발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1996년 첫 대회를 열고 중단됐던 대회가 이번에 재개돼 6년 만에 탄생한 ‘공인받은 소믈리에’다. 그래서 그의 위치는 더욱 커보인다.
공씨는 포도 품종과 포도주 제조 연도 등을 맞히는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을 통과하고는 2, 3차 심사에서는 심사위원들에게 직접 와인을 추천하고 와인 찌꺼기를 걸러내는 디켄팅(decantation) 작업까지 와인을 평가하는 모든 방법에서 우수한 성적을 냈다.
“정말 까다로운 대회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 소믈리에가 되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도전했습니다. 외국 특급호텔에서는 소믈리에가 호텔의 얼굴로 평가를 받습니다. 가장 고급 업장에서 근무하며 각자의 이름을 내걸고 최고의 서비스로 승부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그런 소믈리에가 탄생할 때가됐죠.”
그가 와인 소믈리에라는 직업에 뜻을 품은 것은 1987년 입사 후 6년째인 1992년.
물론 그는 자신의 말로 ‘통영 촌놈’이다. 19세에 처음 호텔에 취직할 때까지는 와인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환경이 그를 변화시켰다. 롯데호텔 38층 메트로폴리탄 클럽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
“외국에 자주 나가는 손님들이 바텐더나 웨이터보다 와인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 같았어요.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꼈죠.”
그가 본격적으로 와인 공부를 시작한 이유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와인에 관한 책이 없었어요. 그래서 프랑스에 가는 사람에게 부탁해 프랑스어로된 와인 서적을 구입했죠. 제 돈을 들여 번역을 맡겨 이것저것 연구하다 보니 와인이라는 게 보이더군요.”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와인의 고향이라는 프랑스 현지의 와인 문화를 접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결국 와인의 본산인 프랑스행을 택했다. 1994년 처음으로 프랑스 보르도 지방을 방문한 이후 지금까지 네 차례나 다녀왔다.
“우리나라에는 소믈리에 학교도 없고, 관련 자격증도 없어요.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지만 전문가를 가르치는 전문가가 없죠. 제가 그 길에 나서보고 싶어요.”
그가 와인을 위해 쏟는 정성은 대단하다. 와인만의 독특한 향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아침 10개짜리 샘플 세트로 향기를 연구한다.
“살구, 아카시아, 레몬, 꿀 향기는 화이트 와인의 냄새 감별을 위해, 시나몬과 바이올렛은 레드와인 감별에 쓰죠.”
몸을 깨끗이 하는 것도 중요하다. 깨끗한 정신과 몸은 소믈리에에게 필수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온갖 세상의 난잡함에 찌든 몸으로는 와인을 느낄 수 없어요.” 그래서 그는 마라톤을 하는지도 모른다.
4년 전부터 시작한 마라톤은 건강한 마음을 지키려는 그의 노력이다. 그는 또 미각을 유지하기 위해 맵고 짠 음식을 피하고 후각을 잃지 않기 위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마시는 술의 양은? 엄청나다. 매일 와인 2병 가량.
“와인 테이스팅은 ‘고르륵’ 소리를 내며 뱉어낸 뒤 남은 와인으로 혀와 입 천정의 돌기를 자극하며 맛을 판별하는 과정입니다. 술에 취할 수도 있지만 정신력으로 버텨내야죠. 실제로 술을 마시면 와인 한 병도 못 마십니다.”
그는 아직 한국의 와인 문화는 멀었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는 1~2년 내에 소비하는 제품 위주로 판매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극소수 부유층의 호사취미로 잘못 취급받고 있죠.”
와인은 그렇게 어려운 식문화가 아니라는 것이 공씨의 설명이다.
“한국의 독주문화도 문제입니다. 급하게 마시고 빨리 취하자는 분위기. 술 한 잔을 마시더라도 여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즐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죠. 와인을 즐기는 것은 여유를 즐기는 것인데….”
물론 와인문화를 호사가의 취미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
“한국의 막걸리도 문화로 자리할 수 있어요. 병째로 흔들고, 뚜껑을 따고, 원산지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이 와인과 비슷한 부분이죠. 와인을 마시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한 것처럼 막걸리도 또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음식문화는 세계 어디에서나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소믈리에 공승식씨는 단지 비싼 와인을 마시는 것만이 와인을 제대로 즐기는 길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포도의 품종, 산지의 정보, 숙성 방법 등 다양한 사항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초보자 와인 100배 즐기기
와인을 제대로 즐기는 일은 힘든 작업이다.
와인은 산지, 포도 품종, 숙성기간, 포도를 수확한 해 등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단 것과 쓴 것 사이에서 수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
공승식씨는 “자신만의 입맛에 맞는 와인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이 와인을 즐기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가 권하는 와인은 이렇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성들은 1~3년 된 생떼밀리옹(St-Emilion), 뽀므롤(Pomerol) 지방의 와인을 마시면 좋다. 멜롯품종의 부드러운 맛이 살아있다.”
평소 독주를 즐기거나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에게 공씨가 권하는 와인은 메독(Medoc) 지방의 까버네 소빌리옹.
약간은 걸쭉한 맛이 목젖을 살살 자극한다. 너무 비싼 와인보다는 3만~4만 원 대의 와인이 초보자에게 적당하다.
좋은 와인을 고르기 위해서는 농담, 투명도, 색 등의 시각적인 부분과 신 맛과 쏘는 느낌의 미각, 냄새의 강약을 알아야 한다.
물론 어렵다. 하지만 와인 바나 호텔 레스토랑과 같이 전문적인 소믈리에가 있는 곳을 찾아 하나하나 따져가면 된다.
“위스키와 달리 오래 된 와인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쓴 맛 혹은 달콤한 맛 등 자신의 기호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빛깔을 따진다면 분홍색 ‘로제’ 와인을, 향이 중요하다면 깊은 맛이 살아있는 오크향 계열을 찾아 보자.”
와인을 즐기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맛 감별만이 아니다. 바로 앙금과 같은 불순물을 걸러내는 디켄팅 작업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공씨는 “와인도 사람과 같아 아이에서 성숙해가는 과정을 거치며 앙금이 생겨나고 이것이 와인의 맛을 변화시킨다. 병째로 마시지 말고 반드시 디켄팅 작업을 거치는 것이 맛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와인을 마시기 전에는 부드럽게 잔을 돌려줘야 한다. 산소가 들어가 발산물을 없애고 부드러운 맛이 유지된다.
와인에 잘 어울리는 치즈류 등의 안주를 곁들이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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